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상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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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
시인 운해雲海 김상진
저 오열嗚咽 멈추게 할 수가 없어
연 삼일 내리는 비
얼마나 젖어 있기에
가슴을 열어서
네 슬픔 모두를 쏟아붓는다
그 이야기를 다 들어줄 수가 없어
주룩주룩 내리는 비
온종일 안개비 뿌리며
들려주는 네 이야기
밤이 깊어도 창 밖에서 여전히 속삭이고 있구나
하마나 멈추는가 싶어
아쉬워 창을 열면
너는 여전히 속삭이고 있고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네 이야기에 취하여
자다 일어나다 뜬 눈으로 새고
알 수 없는 물기에
몸도 마음도 젖는 장맛비 내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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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시의 언어
― 운해 김상진 시인의 '장맛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운해 김상진 시인의 시 '장맛비'는 자연의 한 현상을 넘어서, 내면 깊숙이 스며드는 감정의 음성과 존재의 서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는 겉으로는 ‘장맛비’라는 구체적 자연현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을 끝내 다 받아 안으려는 시인의 내면 윤리가 조용히 물들어 있다.
자연과 감정, 풍경과 존재의 겹침을 통해 운해 시인은 비라는 메타포로 인간 내면의 고요한 울음을 절묘하게 포착해 낸다.
첫 행 “저 오열 멈추게 할 수가 없어 / 연 삼일 내리는 비”는 단순한 기후적 현상이 아닌 ‘오열’이라는 감정의 상징으로 변주되며,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절절함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 비는 누구의 눈물일까? 타인의, 혹은 시인의, 아니면 세상 전체의? 명확히 규정짓지 않고, 다만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젖음’의 공간으로 시는 자신을 열어둔다.
“가슴을 열어서 / 네 슬픔 모두를 쏟아붓는다”는 구절은 운해 시인의 문학 미학을 잘 보여준다. 그는 시를 통해 타자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열어 그 슬픔을 담아낸다.
이는 단순한 공감의 차원을 넘어서, 시인이 감정의 수용자이자 증폭자로 자리매김하는 대목이다. 슬픔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 슬픔을 향해 자신의 가슴을 내어주는 태도는 바로 운해 김상진 문학의 윤리적 근거이며, 시인이 삶을 대하는 철학적 자세다.
중반부로 흐르며 시는 내면적 감각을 더욱 밀도 있게 다룬다. “들려주는 네 이야기 / 밤이 깊어도 창밖에서 여전히 속삭이고 있구나”에서 보이듯, 비는 하나의 서술자이자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이때 비는 단순히 내리는 물방울이 아니라, 말을 하지 못하는 자의 은유, 혹은 세상의 소외된 목소리다. 운해 시인은 그 이야기를 끝내 “다 들어줄 수가 없어”라며 안타까워하지만, 그럼에도 듣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적 감수성의 진정성과 동시에 존재에 대한 책임감으로 읽힌다.
특히 “하마나 멈추는가 싶어 / 아쉬워 창을 열면”이라는 구절은 시인의 독특한 감정선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감정 구조라면, 비가 그치기를 바라야 할 터인데, 시인은 비의 속삭임이 그칠까 아쉬워 창을 연다.
이는 감정을 피하려 하지 않고, 외려 슬픔과 함께 숨 쉬고자 하는 내면의 시적 태도다. 운해 시인은 삶의 어두운 면마저도 시심으로 끌어안는 포용의 시학을 구사한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네 이야기에 취하여 / 자다 일어나다 뜬 눈으로 새고 / 알 수 없는 물기에 / 몸도 마음도 젖는 장맛비 내리는 밤”이라는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정서적 종착지다. 비의 언어는 끝내 명확히 전달되지 않지만, 시인은 그 알 수 없음마저도 사랑한다. 슬픔의 정체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는 겸허한 수용의 미학이 드러난다. 여기서의 ‘젖음’은 곧 치유이며, ‘뜬 눈’은 슬픔을 회피하지 않는 의식의 각성이다.
운해 김상진 시인의 작품 세계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 감성과 존재 사이의 투명한 연결고리를 탐색해 왔다. 그는 시를 통해 고통과 상처, 고요한 침묵의 언어를 읽어내고, 그것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 시에서도 드러나듯, 시인은 물리적 풍경에 내면적 울림을 겹쳐놓고, 슬픔의 무게를 조용히 동행하는 자로서의 존재 방식을 실천한다.
결국 '장맛비'는 단순한 비의 묘사를 넘어, ‘슬픔을 들어주는 삶’, ‘멈추지 않는 감정의 수용’을 말하는 작품이다. 이는 단지 한 개인의 감정 시가 아닌, 오늘날 무수한 상처와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서정적 메타포다.
운해 김상진 시인의 이 한 편의 시는, 장맛비처럼 조용히 스며들지만, 독자의 마음 안에 오래 머무는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그 울림은 곧 삶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시인이 가르쳐주는 것은 슬픔을 피하지 않는 용기, 그 슬픔을 끝내 품어주는 시인의 따뜻한 품격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