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품격, 존재의 이유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나눔의 품격, 존재의 이유
― 다섯 가지 기관으로 배우는 사람의 도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두 손을 모으고 살아온 삶이 있다.

움켜쥐는 데 익숙해져, 놓는 법을 잊은 손.

손은 움켜쥐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손은 잡기 위해, 건네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이 비록 작을지라도,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내어주라.

그것은 시혜施惠가 아니라 책임이다. 두 손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 손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도 알아야 한다.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떡 한 조각, 따뜻한 차 한 잔, 혹은 등 두드려주는 가벼운 손짓 하나에도 진심은 충분히 담긴다.

두 눈이 늘 나를 향해 있었다면, 이제는 그 시선을 타인에게 돌려야 할 때다. 누군가의 눈물, 외로운 표정, 무언의 외침을 보려는 자세. 그것이 두 눈을 가진 사람의 참된 쓰임이다. 시야는 좁을 수 있다. 그러나 시선의 깊이는 마음의 크기로 정해진다. 멀리까지 보지 못해도 좋다. 다만 눈앞의 사람을 제대로 보자. 지나치던 골목의 노인, 교실 구석의 아이, 사무실의 조용한 동료—그들의 얼굴을 눈으로 품는 일, 그것이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시작이다.

두 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늘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엔 귀를 닫았다면 그 축복은 반쪽짜리다. 귀는 음악과 칭찬을 듣기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고통과 고백을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한숨, 조심스레 꺼내는 후회의 말, 울음을 삼킨 침묵. 그것을 들어주는 일은, 때로 그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귀를 열어야 마음도 열린다. 결국, 진심을 담아 듣는다는 것은 함께 아파해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은 말하는 도구다.

그 입으로 늘 불만과 원망만을 되풀이해 왔다면, 이제는 말의 무게를 생각할 차례다. 감사는 말의 품격이고, 고마움은 사람됨의 출발이다. 받은 것이 작더라도 웃으며 "고맙다" 말할 수 있는 이가 삶을 넉넉하게 만든다. 입으로 꽃을 피우는 법을 배우자.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다정한 한 마디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입은 진실의 문이자, 마음의 입구다. 그 입으로 세상을 칭찬하는 법을 배우면, 어느새 세상도 당신을 향해 미소 지을 것이다.

마음은 문과 같다.

굳게 닫히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나 자신조차 고립된다. 그러나 살며 사랑하려면, 그 문을 열어야 한다. 마음은 풍성함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많이 줄 수 없더라도 진심으로 주고, 크게 사랑할 수 없더라도 꾸준히 다가가자. 마음은 나눌수록 자라고, 베풀수록 단단해진다.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것,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것, 외로운 이를 알아보는 것—이 모두가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사람은 오감의 동물이다.

그 오감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손은 나누기 위해, 눈은 바라보기 위해, 귀는 듣기 위해, 입은 감사하기 위해, 마음은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다섯 가지 기관은 모두 외부를 향한다. 나 자신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도구들이다. 결국 인간은 타인을 향할 때 가장 인간답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기술은 진보하고, 시간은 바쁘게 흐르지만, 사람의 도리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나 자신이 되어주는 일이다. 지금 당신이 가진 손, 눈, 귀, 입, 마음. 그것을 누군가에게 조금씩 건네는 일. 그 작고 고요한 나눔이야말로, 이 시대 가장 고품격의 삶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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