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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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길을 잃고 있다
청람 김왕식
바람은 늘 방향을 알고 있었다.
산과 산 사이를 지나
물 따라 굽이굽이 돌며
꽃잎을 흔들고,
새의 깃을 다듬고,
사람의 뺨을 스쳐
계절을 알렸다.
요즘의 바람은
낯설다.
예고 없이 몰아치고,
불어야 할 때 잠잠하고,
불지 말아야 할 곳에서
소리 없이 흔든다.
바람이
길을 잃고 있다.
그건 단지 기류의 변화가 아니다.
지구의 숨결이
불규칙해졌다는 뜻이다.
온도차는 더 심해졌고,
기압은 방향을 바꾸었으며,
하늘은 더 이상
예전의 하늘이 아니다.
우리는 이 바람을
감각으로 먼저 느낀다.
창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폭력적인 한기,
걷던 골목에서
갑자기 불어온 모래먼지.
이 바람은
예전의 바람이 아니다.
한때 바람은
소식이었다.
먼 데서 피어난 꽃향기,
익어가는 들판의 숨결,
노인의 기침 소리까지
가만히 실어 나르던
정직한 전달자였다.
그러나 지금,
바람은 오염을 실어 나르고,
열을 확산시키며,
불안을 전한다.
도시는 바람을 막기 위해
벽을 높이고,
창문을 닫는다.
문제는
바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바람은
환기가 아니라 위협이며,
순환이 아니라 파괴로
받아들여진다.
바람이 방향을 잃는 순간,
생태계도 흔들린다.
꽃가루는 제때 퍼지지 않고,
이동하던 조류는
경로를 잃고 착오를 겪는다.
공기 중의 미립자들은
더 넓게, 더 깊게 퍼진다.
바람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균형의 감각을 따라 움직인다.
그 바람이 지금
제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지구 전체가
방향을 잃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사람은
자신의 호흡을 돌아보아야 한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그 단순한 행위 하나에도
바람의 리듬이 있다.
우리가
속도를 줄이고
욕망을 멈출 때,
바람은 다시
제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산을 건드리지 않고,
강을 가두지 않고,
들판의 여백을 남겨둘 때
그 여백 사이로
바람은 다시 흐를 것이다.
바람은 인간의 발길이
덜 닿은 길을 좋아한다.
그 길은
지구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길이다.
오늘,
바람을 따라 걸어본다.
방향 없는 바람결 사이에서
나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 물음이 끝나고,
잠시 멈추었을 때
들려온다.
작은 바람 한 줄기,
그건 다정한 요청이었다.
“함께 길을 찾자”라고.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