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우물이 사라진 날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낡은 우물이 사라진 날





청람 김왕식





마을 한가운데
항아리처럼 움푹 팬 자리.
돌을 둥글게 쌓고
두레박 하나 길게 매달린
그곳에 우물이 있었다.
아이들은 물을 긷기보다
거기 기대어 놀았고,
어른들은 고단한 일을 마치고
그 곁에서 물 한 바가지로
숨을 골랐다.

그 우물이
사라졌다.
땅을 파헤치고,
포클레인이 들어오고,
콘크리트로 덮인 후
그 자리는 주차장이 되었다.
차 두 대가 멈춘 자리에
마을의 숨결이 묻혔다.

우물은 단지
물이 솟는 구멍이 아니었다.
그건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기억이 모이는 장소였으며,
가장 맑은 말이
비로소 태어나는 자리였다.

하루에 한 번씩
우물을 들여다보며
사람은 자기 속을 본다.
물이 마르면
삶도 메말랐고,
물이 탁하면
마음도 혼탁했다.
우물은 침묵 속에서
삶의 징후를 보여주었다.

지금,
우물은 사라지고
정수기가 들어섰다.
한 번 누르면 나오는 편리한 물.
그 물엔
시간이 담기지 않았다.
기다림도, 깊이도,
대화도 없다.

낡은 우물이 사라졌다는 건
함께 마시던 기억이
잊힌다는 뜻이다.
우물은 언제나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목이 마른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졌고,
그 순서에는
예의와 배려가 있었다.

우물가에서 태어난
관계의 물결은
말없이 사람들을 묶었다.
이젠
각자의 수도꼭지를 틀고,
각자의 컵에만
물을 채운다.
공유의 시대는
마른땅처럼 갈라지고 있다.

우물 하나 사라진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우물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우물과 함께
세월이, 풍경이,
관계와 감정이
사라진다.

마을을 떠난 건
물이 아니라
기억이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자연이 뿜어 올리던 정직한 목소리,
그것을 듣던 사람들의
느긋한 태도.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갈증을 해소해야 할까.
속도를 멈추지 않는 일상,
말라가는 마음,
기억하지 못하는 풍경.
그 모든 것을
다시 길어 올릴 우물이
필요하다.

어쩌면
진짜 갈증은
물의 부족이 아니라
잊힌 우물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오늘,
사라진 우물터 앞에 선다.
자갈 사이로 피어난 풀 한 포기.
그 뿌리가 알려준다.
아직,
물이 있는 곳을.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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