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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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서 사라진 계절
청람 김왕식
달력은 여전히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
창 밖 풍경은
더 이상 그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봄은 겨울을 밟고 들어서고,
여름은 봄을 밀쳐낸다.
가을은 짧아지고,
겨울은 뜨겁다.
사계절이 흐르던 자리에
이제는 두 계절이 남았다.
덥거나 춥거나.
중간이 사라졌다.
경계가 무너졌다.
계절은 점차
극단으로 기운다.
언젠가 봄볕 아래
눈이 내렸고,
한여름 밤
패딩을 꺼내 입은 적이 있으며,
단풍잎이 채 지기도 전에
폭설이 덮쳤다.
그런 날이
이제는 특별하지 않다.
지구가 더 이상
자기 리듬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계절의 시계는
망가졌다.
우리는
망가진 시계를 들여다보며
여전히 시간을 측정하려 한다.
봄은 3월부터 5월,
여름은 6월부터 8월,
가을은 9월부터 11월…
그러나 이 분류는
더 이상 자연을 설명하지 못한다.
달력에 남은 계절은
종이 위의 시간일 뿐,
생명의 흐름과는
멀어져 가고 있다.
한때 계절은
약속이었다.
꽃이 피면
벌이 오고,
비가 내리면
씨앗이 자랐다.
그 순환이 있었기에
삶은 조화로웠고,
기다림은 의미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다려도 피지 않고
찾아와도 만나지 못하며
맺혀야 할 것이
맺히지 않는 시간들.
그게 지금의 계절이다.
우리는
달력을 바꾸어야 할까?
아니면
자연을 되돌려야 할까?
달력을 고치는 건 쉽다.
날짜를 바꾸고,
기념일을 옮기면 된다.
그러나 자연의 시간은
그렇게 고쳐지지 않는다.
지구는 인간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극단적인 기온,
이상한 바람,
한꺼번에 몰아치는 비.
그것은 단지 기상이변이 아니라
시간의 왜곡,
계절의 상실이다.
사라진 계절은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맑은 초봄의 들판,
서늘한 가을 저녁,
차가운 공기를 품은 새벽 숲.
그 풍경들은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계절들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지켜내는 것이다.
계절을 회복한다는 것은
곧 생태의 흐름을
되살린다는 뜻이다.
중간의 온도,
중간의 습도,
중간의 시간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멈추고, 줄이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계절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호흡이다.
그 호흡이 끊기면
모든 생명은
숨이 가빠진다.
달력에서 사라진 계절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오늘,
하늘을 바라본다.
그 하늘 아래
되찾아야 할
사계절이 아직 남아 있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