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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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을 닮은 거리
청람 김왕식
거리에 나무가 없다.
꽃도 없다.
날아다니는 벌 한 마리,
풀밭을 뛰는 참새 한 마리조차 없다.
인도의 틈새마다 시멘트가 메워지고,
건물의 벽엔 녹색 대신 간판만 달린다.
그 거리엔,
멸종이 걷고 있다.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들이 걷는 길이
한때는 다람쥐가 뛰놀던 숲이었고,
도롱뇽이 숨 쉬던 늪이었다는 것을.
그들의 발밑에서
생명들이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소리 없이 줄어든 울음,
보이지 않게 사라진 깃털.
도시는 그것을 통보하지 않았다.
거리는 점점 닮아간다.
어느 도시나 비슷한 전광판,
비슷한 체인점,
비슷한 조경화분.
가로수도 일렬로 정돈되어
바람에 휘청이지 않는다.
잎새는 계절과 상관없이 잘리고,
그늘은 머물지 못하고 지나친다.
도시는 생명을 '관리'한다.
멸종은 단지
희귀한 동물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건 도시의 구조에서 시작되는
은밀한 퇴장이다.
먼저 사라지는 건
작은 곤충의 이름이고,
그다음은 계절의 소리이며,
마침내 사람의 감각이다.
그렇게 멸종은
거리의 얼굴을 바꾼다.
기억하라.
한 마리 벌이 없으면,
한 송이 꽃도 피지 않는다.
꽃이 없으면
새는 날지 못하고,
새가 없으면
침묵이 도시를 잠식한다.
그리고 침묵은
기계의 소음으로 덧칠된다.
진짜 사라진 것들은
소리보다 조용하게 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풀을 만지지 않는다.
벌레를 무서워하고,
진흙을 불결하다 여긴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멀리서 감상하는 대상이거나
피해야 할 위험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리에서
자연을 걷어낼수록
사람도 그 자리를 떠난다.
멸종은 거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들어와
감정을 단순화시키고,
표정을 사라지게 한다.
거리에 웃음이 줄어들고,
고함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생명이 줄어든 징조다.
따뜻함이 아닌 효율이,
공존이 아닌 질서가
우선이 된 도시에서
사람은 존재로서가 아니라
동선으로 움직인다.
묻는다.
거리에 지금
진짜 살아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노래하는 새가 없고,
웃으며 걷는 아이가 없고,
가만히 하늘을 보는 이조차 없다면
그곳은 살아 있는 거리인가,
죽어가는 거리인가.
이제 다시
거리 위에 생명을 초대해야 한다.
도롱뇽이 지나가도
자동차가 잠시 멈추는 길,
민들레 씨앗 하나가
방해받지 않고 바람을 탈 수 있는 길,
그런 거리를 꿈꿔야 한다.
왜냐하면 거리란
생명이 건너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 다리가 무너지면
우리는 모두
자연에서 추방당한다.
그 거리엔
진짜 멸종이 남게 된다.
생명의 자리 없이
사람만 남은 풍경,
그것이 가장 슬픈
풍경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