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가 사라진 마을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물소리가 사라진 마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예전엔 마을에 물소리가 있었다.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도랑을 타고 흐르던 계곡물,
우물가에서 두레박 흔드는 소리.
아이들이 고무 대야에 물을 붓고
물장난 치며 깔깔 웃던 소리.
그 모든 것이 마을의 맥박이었다.

지금은
물이 없다.
아니
물소리가 없다.
수도관 속에서 흘렀다가
배수구로 사라지는 물.
그 흐름은 감춰지고,
그 울림은 지워졌다.

고요하다 못해
불길한 침묵이
마을을 감싼다.
우물은 시멘트로 덮였고,
도랑은 파이프로 대체되었다.
논두렁을 따라 흐르던 물길은
이제 아스팔트 밑으로 숨어버렸다.

마을은 더는
물을 키우지 않는다.
빗물을 받지 않고,
흙 속에 스며들 틈을 주지 않는다.
하수구가 모든 것을 삼키고,
물이 지나간 자리에
먼지와 침묵이 남는다.

물이 없으니
사람의 말도
짧아졌다.
물을 뜨기 위해 나와
서로 마주 보며 나누던 안부가
이젠 필요 없는 인사처럼 사라졌다.
두레박 대신 스마트폰,
우물 대신 정수기,
대화 대신 조용한 무관심이
마을을 채운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흐르지 않는 마음도
곧 썩는다.
어느 날,
마을 어귀를 지나는 비구름이
그곳을 비껴간다면
그건 하늘이
그 마을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왜
물을 감추었을까.
물의 길을 끊고,
그 소리를 봉인했을까.
물이 떠난 자리에
도시가 들어섰고,
편리함이 흐름을 대체했다.
그 편리는
언제부턴가
메마름을 숨기지 못한다.

물소리는 생명의 숨결이었다.
겨울에는 얼어붙고,
봄에는 다시 흐르고,
여름엔 넘쳐흐르며
가을엔 조용히 가라앉던
그 순환의 리듬.
그 속에서 사람도
자연도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물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물의 소리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빈 공간, 느린 시간,
귀 기울일 마음.
그것 없이는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우리를 치유하지 못한다.

언젠가
잊힌 우물 하나를
살려내는 날이 오기를.
그 옆에 의자 하나를 놓고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의 마음을
다시 되돌려볼 수 있기를.

도랑의 물이 다시
마을을 지난다면,
그 물소리는
사람의 말소리를 닮을 것이다.

그 말소리는
마침내
마을을 다시 살릴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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