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 ㅡ 불가능 위에 다리를 놓은 사내,

김왕식




□ 정주영 회장





정주영

― 불가능 위에 다리를 놓은 사내, 신화와 땀의 상징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정주영은 신화였다.

그것은 종교적 광휘가 아니라, 땀과 무모함으로 다져진 육체적 신화였다.
그는 태생부터 불가능의 중심에서 자랐다. 강원도 통천, 굶주림과 고된 농사, 막노동과 쌀장사, 그리고 고향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전설로 올라선 기적의 주인공.

“해봤어?” 그 한 마디는 단지 격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기를 관통한 세계관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도면이 있었다.
도로를 뚫고, 조선을 띄우고, 자동차를 굴리고, 건설 현장을 열었다.
그는 타인의 회의 속에서 가능을 보았고, 그 가능은 곧 실행이 되었다.

정주영에게 자본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였다.
그는 신용을 담보로 미래를 저당 잡는 방식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모두 ‘없는 것을 만든’ 회사였다.
울산 바닷가에 기름 한 방울 없는 정유공장과 조선소를 세운 그는,
기술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자본주의를 꿰뚫은 사람이었다.

그는 무식하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지식보다 감각에 뛰어났고, 감각보다 의지에 충실했다.
정주영의 리더십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서 출발했고,
그 ‘어떻게’를 현실로 바꾸는 터무니없는 집요함이 그의 엔진이었다.

1998년, 그가 소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갔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그것은 정치가 아닌 기억의 회복이었다.
분단을 넘는 상상의 징검다리.
그의 마지막 도전은 사업이 아니라 민족의 심장에 닿는 제안이었다.
비판과 조롱도 따랐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나라가 이렇게는 안 된다”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주영의 신화는 단순한 칭송으로 남아선 안 된다.
그의 방식은 과감했지만, 때론 무모했고,
노동권과 환경, 사회적 분배에서 수많은 문제를 방치했다.
그는 만들 줄 알았지만, 나눌 줄은 서툴렀고,
그의 자식들은 그 신화를 ‘가문의 영예’로만 기억하려 했다.

정주영은 한 명의 기업가가 아니라,
국민이 가난을 잊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는 ‘의지의 얼굴’이었다.
그는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다리 위에서
가장 큰 걸음을 내디딘 사람으로 기억된다.




■ 詩 | 해봤어?



청람 김왕식





그는 물었다
해봤냐고
없는 땅에
길부터 그리던 사내

굴착기처럼 말했고
용접기처럼 추진했다
남들이 돌아설 때
그는 다리를 폈다

다리는
대양도 넘고
분단도 넘었다

그의 말은 짧았고
그의 행보는 길었다
의지는 그의 이름보다
먼저 도착했다


ㅡ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김어준이라는 현상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