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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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 마을 촌장 '이안수 작가 부부'가
10년 작정으로
외국 여행 중이다.
며칠 전, 부부가 몸이 아파 힘들었다.
하여
회복 위한 기도의 시를 부부에게 보냈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이안수 작가가 외국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오늘 보내왔다.
"모든 말에는 신묘한 에너지가 있다면 시인의 에너지가 모아진 시는 신의 중계자 역할이 위탁된 사제가 신에게 고하는 포멀 문서가 되는 듯싶습니다. 우리의 회복과 이렇듯 안전할 수 있음도 시인의 보고서 때문임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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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보고서가 닿은 그대에게
ㅡ먼 곳의 이안수 작가님께 드리는 기도문
청람 김왕식
이안수 작가님,
먼 타지에서 보내주신 귀한 말씀, 조심스레 펼쳐 읽었습니다.
그 한 줄 한 줄엔 회복의 숨결이 담겨 있었고, 문장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실려 있었습니다.
감사와 고백이 빛처럼 엷게 번져 있는 그 문장은, 말이 곧 생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고요한 시편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말은 결코 공허한 소리가 아닙니다.
신묘한 에너지를 품은 말 한 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음선처럼 마음과 마음을 잇고, 땅과 하늘을 잇고, 인간과 신을 잇는 다리가 됩니다.
시란, 그런 언어의 정수가 모인 생명의 호흡입니다.
고통 앞에서 무너지는 대신, 시인의 언어로 병마와 맞서고, 절망 대신 기도로 문장을 선택한 작가님의 선택이야말로, 살아 있는 시요, 살아낸 문학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한 줄의 시를 보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시는 아마도 저 너머에서 들려온 떨림을 따라 적은, 무명의 대필文이었을지 모릅니다.
하늘의 응답을 대신 적는 사제의 펜 끝처럼 말이지요.
말씀이 살이 되고, 기도가 숨결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작가님 부부의 회복이 그 증언이며, 그 평안이 그 시의 완성입니다.
열 해의 여행, 얼마나 긴 강을 건너려는 길입니까.
이제 알겠습니다.
그 노정은 단지 세계를 누비는 여로가 아니라, ‘자신을 다시 쓰는 시인의 문장’이라는 것을요.
병은 어쩌면 그 장정의 서문이었고, 기도는 그 머리말이었으며, 이제 남은 페이지들은 날마다의 회복, 매 순간의 찬송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대의 걸음마다 언어가 자라고, 눈빛이 닿는 자리마다 시가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부디 다시는 아프지 마십시오.
병이 지나간 자리에 더 깊은 생명이 자라고,
기도가 머물렀던 순간마다 시가 탄생하듯,
이제부터는 생의 평안이 그대의 주석이 되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 여행이, 더는 병과 싸우는 기록이 아니라 사랑과 발견의 기도문으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그대의 발끝이 닿는 나라마다 시 한 편씩 남기고,
그대의 호흡이 머무는 하늘마다 기도 한 줄씩 새기시길.
마침내 귀국하는 날,
그대는 낯설지 않은 시간들을 품고 돌아올 것입니다.
누구도 겪지 못한 열 해의 문장들,
그대만이 수집한 세계의 속삭임들,
이방의 골목에서 피워낸 은유와 상징들이
한 권의 시집처럼 다녀오리라 믿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대의 건강한 발걸음이 한국의 흙을 다시 밟는 날을.
그대의 눈동자 속 풍경이 우리의 언어로 번역되는 그날을.
― 다시 건강한 시로 돌아오소서.
세상의 끝에서도 신은 시인을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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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보고서를 들고 떠난 이에게
청람
먼 바람의 연필로
지도 아닌 마음을 그리며 떠난 이여,
낯선 별빛 속에서 아팠던 날조차
시의 언어로 다시 숨을 적셨구나.
몸이란 낡은 가방에
시간이란 비를 고이 담고,
기도라는 우산 하나 들고
그대는 회복이라는 항구에 닿았지.
말은 단순한 음이 아니라
하늘이 응답하는 문장의 형식,
그대의 입술에서 새긴 시는
신의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였구나.
아픔도 지나면 시가 되듯
쾌유는 결국 축복의 문장이 되어
열 해의 여정을 이끄는 제목이 된다.
가시는 길마다 시가 피고
돌아오는 날, 시가 환호하리라.
다녀오소서, 사제의 마음으로
다녀오소서, 시인의 발걸음으로.
2025, 7, 21, 월
청람 김왕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