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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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로 가는 길, 직지를 품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외버스를 타고 청주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의 고장. 하지만 오늘은 고서보다 따뜻한 사람 한 분이 나를 부른다. 문인 임준빈 작가. 그 이름 하나만으로 청주는 이미 마음속에서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지도 위의 점 하나가 아니라, 가슴속 한 줄기의 온기다.
버스 창밖의 풍경은 서서히 낯설어지고, 그 낯섦은 곧 설렘으로 바뀐다.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운동화를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가도 이따금 가슴이 쿵쿵거려 잠을 설친다. 도무지 잠들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도착할 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기다리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곳은 이미 목적지가 된다. 청주는 그런 곳이다.
생각만 해도 온기가 먼저 스며든다. 임준빈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그리는 순간, 따뜻한 가슴이 살포시 먼저 다가온다. 그분의 글은 늘 자연을 닮았고, 그분의 삶은 바람처럼 순하고 물처럼 고요했다. 숲길을 걷다가 문득 흙냄새가 좋다 느껴질 때처럼, 그의 문장과 마음은 말없이도 위로가 된다. 그런 사람이 기다리는 청주는 단지 한 도시가 아니다. 문학이라는 다정한 산책길의 입구다.
청주로 가는 길은 직지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활자 하나하나에 온기를 새기고, 진실을 낳은 그 정신이 지금도 이 도시에 흐르고 있다. 오늘, 나는 직지의 도시에서 또 하나의 직지 같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세월의 고통을 품되 절망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상처를 껴안되 아름답게 말하는 사람. 임준빈 작가는 이 시대의 직지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되, 그것을 자신이라 말하지 않는 겸손한 기록자.
그곳의 문화예술인들과의 만남 또한 기대된다. 빛나는 이름이 아니라, 서로의 눈빛이 반가운 자리. 글과 마음이 오가고, 고요한 울림이 대화 속에 퍼질 그 순간이 벌써부터 고대된다. 누군가의 말이 눈물처럼 맺히고, 또 다른 이의 미소가 햇살처럼 번지는 시간. 문학은 그렇게 우리를 묶는다. 직지처럼 오래되고 깊이 새겨진 진실로.
이 길은 단지 청주로 향하는 여정이 아니다. 마음의 풍경이 넓어지고, 한 사람의 따뜻함이 세상 끝까지 번지는 여정이다. 가는 길에 문학이 있고, 기다림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뛴다.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세상의 첫 소풍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오늘을 껴안는다. 이 설렘은 비단 청주행 버스가 출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 가만히 기다려주는 한 사람의 가슴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문학의 품에 안긴다. 고요하고 따뜻한, 청주의 품 안으로.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