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갑하 시인의 시조와 문태준 시인의 평문을 읽고

권갑하 문태준 김왕식


□ 권갑하 작가의 달항아리







달항아리



시조시인 권갑하





그대 남긴 빈자리
달 저문 그믐 같다
몇 해를 건너왔나
다신 뵐 수 없어도
어스름
달빛 차림으로
오실 듯한 어머니


□ 권갑하 시인


1958 경상북도 문경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 박사
1992 조선일보 신춘문예 '처용의 탈' 당선
2011년 제30회 중앙시조대상 대상





권갑하 시인의 달항리를 읽고

문태준 시인

달항아리는 다 비운 듯해도 다시 보면 가득 차 있다. 단아한 몸가짐과 은은한 빛깔, 둥근 모양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말없이 잠잠하고, 됨됨이가 원만하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세상을 떠나신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달항아리에는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비친다. ‘달빛 차림’이라는 시구에는 어머니의 옷차림과 가만한 걸음새와 어질고 자애로운 성품이 배어 있다.

권갑하 시인은 달항아리 연작 단시조집을 최근에 펴냈다. 시인은 달항아리에서 고운 사람의 눈빛, 균열, 잘디잔 균열에 스며든 별빛과 종소리, 숨결, 맑은 울림, 침묵과 적막 등을 읽어낸다. 이뿐만 아니라 달항아리를 관조하면서 자기 수행을 점검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 안에 샘솟는 빛”과 “스스로/ 불을 켜 드는/ 견고한 고독의 꽃”을 발견한다.

달항아리에는 여름이 괼 것이다. 쇠가 맞부딪치는 듯한 강렬한 햇살과 소낙비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낮 동안의 폭염을 견딘 사람의 고단한 숨소리가 깃들 것이다.




달항아리에 괸 그리움의 시간
― 권갑하 시인의 시조와 문태준 시인의 평문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조시인 권갑하의 「달항아리」는 단아한 언어 속에 슬픔과 사랑, 고요한 미학을 머금은 작품이다. 이 짧은 시조 한 편에, 그는 삶의 근원을 잉태한 어머니의 부재와 영원을 향한 그리움을 '달 저문 그믐'에 비유하며, 사라짐의 허무 너머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생의 온기를 포착한다. ‘어스름 달빛 차림’이라는 다섯 자의 시구에는 비단 의복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애 전반이 스미고, 그 품 안의 세계 전체가 달빛처럼 가만히 우는 듯하다. 그것은 떠난 존재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리움이라는 시간의 항아리에 잠겨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문태준 시인은 이 시를 단순한 회상의 시로 읽지 않는다. 그는 ‘달항아리’를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수행적 존재로 보며, 그 안에 스며 있는 어머니의 심상, 그리움의 결, 고독의 불꽃, 그리고 사계절의 소리를 읽어낸다. 그의 평문은 단순한 비평을 넘어 시인의 세계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시가 된다. “스스로 불을 켜 드는 고독의 꽃”이라는 문장엔, 삶의 중심에 침묵과 고요를 두고, 그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성찰을 엿보는 통찰이 담겼다.

두 시인은 외적인 화려함보다 내면의 정숙함을 추구한다. 권갑하 시인은 달항아리의 심상에서 ‘되비침의 미학’을 구현한다. 달은 결코 찬란하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밤을 비추는 가장 잔잔한 빛이다. 그 빛은 어머니의 숨결, 삶의 등불이 되며, 살아 있는 자들의 길을 밝혀준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빈자리’조차도 가득 차 있다.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존재, 이것이 바로 달항아리가 갖는 존재론적 의미다.

문태준 시인은 이러한 시적 미감을 ‘관조’의 자세로 끌어올린다. 그는 달항아리를 통해 자아를 비추고, 그 안에 삶과 죽음, 채움과 비움, 고요와 동요를 함께 읽는다. 그의 시적 사유는 물질적이기보다 명상적이며, 실재보다 심상의 투명한 물결을 좇는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통해 자기를 보고, 존재를 되묻고, 그리움을 사유하는 일이다.

권갑하의 시조는 비록 3구 6행의 짧은 틀 안에 있으나, 그 울림은 한 생애를 관통하며, 문태준의 글은 그 여운을 천천히 되짚으며 말 없는 길동무가 된다. 이 두 사람은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사라진 것 속에 있는 존재의 흔적을 더듬는다. ‘달항아리’는 그들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닌 삶을 담는 그릇이며, 시란 그 그릇에 담긴 마음의 온도다.

마침내 독자는 이 두 시인 앞에서 묻는다. “내 안에도 그런 항아리가 있을까.” 고요한 대답은 오직 달빛처럼, 흘러간 자리에서 조용히 번져온다. 그리움이, 시가, 삶이, 그렇게 항아리에 괴어 있는 것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태준 시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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