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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구 시인의 「그리운 날의 시」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그리운 날의 시



시인 전홍구





어느 날 문득
꺼내보고 싶은 시가 있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가에 따뜻한 바람이 스치는 시

바쁜 하루 끝자락
마음이 기울어지는 밤이면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내어
아무 말없이 토닥여 주는 시

밤하늘 볓빛처럼
멀리서도 환하게 빛나고
언제든 꺼내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시.

나는 책장을 닫지 못한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지워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어
시집을 덮어도 시는 사라지지 않는 시




전홍구(시인. 수필가)


≪문예사조≫ 시, 수필 등단(1991),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국제 PEN한국본부 정회원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이사, 서울시인협회 이사
수상 : 2008년 한국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2012년 세종문화예술 대상 수상
2024년 한국환경관리사 총 연합회 환경시 문학대상 수상, 어우당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시집 : 제3집『나뭇가지 끝에 걸린 하늘』, 제5집『먹구름 속 무지개』,
제6집『그래도 함께 살자고요』제7집『나의 펜은 마른 적이 없었다』






시집을 덮어도 사라지지 않는 시
― 전홍구 시인의 「그리운 날의 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전홍구 시인의 「그리운 날의 시」는 단지 시를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시를 삶으로 여긴 한 인간의 내면 고백이며, 존재의 가장 조용한 순간에 다가와 우리를 토닥이는 언어의 손길이다. 시인은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시적 삶의 정수를 응축한 서정의 결정체다.

“어느 날 문득 꺼내보고 싶은 시가 있다”는 첫 구절은 마치 오래된 편지를 꺼내는 손길처럼 다정하다. 시인은 독자에게 명령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문득’이라는 시간의 틈을 타고 다가오는 시의 존재를 낮은 목소리로 건네줄 뿐이다. 여기서 시는 결코 지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감정의 습지 위를 부드럽게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은 존재다. “눈가에 따뜻한 바람이 스치는 시”라는 표현은 곧 시인이 추구하는 문학 미학의 정체를 드러낸다. 시란 정면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감으로써 마음의 가장 깊은 층을 적시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이다.

“바쁜 하루 끝자락 / 마음이 기울어지는 밤이면”이라는 구절은 인간 실존의 가장 취약한 시간을 포착해 낸다. 이때 시는 단순한 독서 대상이 아니라, 삶을 다독이는 존재로 승화된다. 전홍구 시인이 말하는 시는 고요히 곁에 앉아주는 벗이자, 침묵 속에서도 ‘기억을 불러내어’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손이다. 그는 시를 쓴다기보다는 ‘시를 기다리는 사람’이며, 시가 찾아와 말을 걸어올 때까지 그 문을 조용히 열어놓고 있는 존재이다.

“밤하늘 별빛처럼 / 멀리서도 환하게 빛나고”라는 대목에서 시는 결국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내면의 등불로 나타난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독자와 시를 연결 짓는 감성의 끈을 보여주며, 그 시가 '꺼내 볼 때마다 따뜻해지는' 보물과 같은 존재임을 노래한다. 이때 ‘시’는 추억이고 사람이며, 때로는 어린 날의 자화상이자 지금의 나를 붙잡아주는 또 다른 자아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절정에 이른다. “나는 책장을 닫지 못한다 /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은 / 지워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어”라는 고백은 단지 문학에 대한 애착을 넘어, 존재의 일부로서 시가 자리 잡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에게 시는 일회적 감상이 아니라 ‘다시 읽고 싶은’ 삶의 일부이며, 시집을 덮어도 여전히 마음속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은 존재다. 이로써 전홍구 시인의 시는 ‘기억의 잔상’이 아닌, ‘지속의 언어’로 자리매김한다.

전홍구 시인의 작품 세계는 겉으로는 조용하고 소박하지만, 그 내면은 깊고 단단하다. 그는 삶의 언저리에 놓인 작은 감정과 일상의 결을 무심한 듯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과장이나 수사는 없다. 그러나 그 단정한 언어에는 세월을 견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과 감정의 내공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시를 쓰는 이가 아니라, 시와 함께 사는 사람이다.

그의 삶의 가치철학은 ‘시처럼 살자’는 데 있다. 말보다 침묵을, 외침보다 속삭임을, 이성과 지식보다 감성과 공감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모든 시편 속에 은은하게 스며 있다. 전홍구에게 시란 삶의 위로이며, 기억의 서랍이며, 사랑이 닿았던 자리를 다시 어루만지는 손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곧 ‘그리운 날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의 시집은 닫히지 않는다. 페이지를 덮어도 문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기억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다시 읽히는 시, 그리하여 사라지지 않는 ‘그리운 날의 시’다. 그리고 그 시는,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품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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