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조은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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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의 길, 은빛 물결처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처음 그를 만난 날을 기억한다.
서울외고 교복을 입은 눈빛은 이미 먼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날의 조은비는 소녀였지만, 말의 결은 어른의 신중함을 닮았고, 태도는 조용한 결단으로 반짝였다. 서울대학교와 교대를 꿈꾸며 교대입시 연구소 문을 두드렸던 그녀는 경쟁의 풍랑 속에서도 오롯이 중심을 지켰다. 누구보다 예민한 입시의 바늘길을 통과하면서도, 조은비는 늘 남의 손을 먼저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연구소의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을 연주하던 소녀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던 선율은 그의 삶이 예술로 다듬어질 것이란 예고였다. 때로는 음표가 그의 심장을 대신 말했고, 때로는 정적이 그의 사유를 감쌌다. 모두가 경쟁에 몰두할 때, 은비는 음악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낭만이 아니라 품격이었다.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이룬 사람이기에 가능한 길.
조은비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했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는 머무르지 않았다. 독일로 건너갔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스스로를 가꿨고, 눈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는 학문의 깊이만을 좇지 않았다. 세계를 향해 열린 감각으로, 삶을 예술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독일의 하늘 아래서 그는 또 다른 은비로 태어났다. 곧 무대 위에 섰다. 미스 인터콘티넨탈 코리아 대회. 기라성 같은 이들 속에서도 ‘미(美)’로 등극한 그는 내면과 외면 모두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세속적 영광이 아닌, 자신을 아끼며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코리아헤럴드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고, 아너운서로서 언어를 뛰어넘는 설득력을 가졌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메시지는 진심으로 가득했다. 최연소 국회의원 후보로도 거론되었지만, 그는 외려 일상의 소소한 빛을 더 사랑했다. 대중의 조명이 아니라, 삶의 등불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결정이었던 듯, 결혼을 했고, 새 생명을 품었다. 모성이란 이름으로도 그는 여전히 조은비였다. 아이를 품은 채 대학원 강의실에 나타난 모습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였다. 지성의 열기와 생명의 숨결이 공존하는 찬란한 순간이었다.
그는 결국 또 하나의 문턱을 넘었다. 출산과 학업이라는 두 개의 산을 나란히 넘고, 무사히 과정을 마쳤다.
지금, 나는 묻는다.
조은비의 끝은 어디인가.
곧 깨닫는다. 그녀에게 끝은 없다. 은비의 길은 마치 물결 같다. 낮고 깊게 흐르다가, 어느 날엔 찬란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또 어떤 날엔 바람의 길을 따라 세상을 감싸 안는다.
조은비. 그 이름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과 품격, 고요한 용기와 아름다운 분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절을 건너온 그의 길은 이제 또 다른 이정표가 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그의 삶은, 누군가의 지도이자 별빛이다. 앞으로 그가 어디로 향하든, 그 길은 분명 빛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답게, 은빛 물결처럼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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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비, 한 사람의 빛
청람 김왕식
들판을 건너는 바람이
가장 투명한 시간을 지나올 때
그 이름이 불린다
조은비
한 자 한 자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깊은 숲이 깃든다
청춘의 열매가 되기까지
수많은 계절을
피아노 건반처럼 건너왔다
희망을 연주하고
절망조차 선율로 바꾼 사람
그는 경쟁의 화살을 등지고
사람의 손을 먼저 잡는 사람이었다
미인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내면의 결이 아름다운 사람
그 미는 단장보다
단아함에서 왔다
무대보다 더 빛나는 자리에서
그는 조용히 중심을 지켰다
글로 말하고
음악으로 숨 쉬며
어느 날은 아기의 체온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학문의 길도, 사랑의 길도
그는 거룩하게 걸어낸다
사람이 빛나는 이유는
그 빛이 자기만을 비추지 않기 때문
조은비,
그 이름은 등불이다
누군가의 어둠을 비추고
또 다른 사람의 길이 되어준다
우리는 모두 안다
그의 끝은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은빛 물결처럼
계속 흘러가는 이름
조은비.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