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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에 담긴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적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육사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 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목숨보다 붉은 꽃, 이육사의 시적 맹세
― 「꽃」에 담긴 이육사의 생애와 문학적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육사의 시 「꽃」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조국을 잃은 민족의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의 맹세이자, 시인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바친 독립정신의 화현(化現)이다. 이 작품은 해방 이전, 조국의 하늘마저 끝장나버린 시대의 암담한 현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절망의 한복판에서 외려 더 붉고 뜨겁게 피어나는 ‘꽃’을 그려낸다. 그것은 단순한 시상의 전개가 아닌, 처절한 현실에 맞선 시인의 삶의 신념이자, 꺾이지 않는 저항의 은유이다.

시의 첫 행,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는 암울한 시대를 가리킨다. ‘동방’은 곧 조선이며, 그 하늘마저 끝나버렸다는 절규는 민족의 현실을 압축한 표현이다. 여기서 이육사는 자연현상을 넘어, 민족정신의 단절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는 그런 절망에 굴하지 않는 저항의 의지이다. 이때의 ‘꽃’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조차 멈추게 하지 못하는 불굴의 의지이며, 죽음을 ‘꾸미는’ 시인의 각오이다.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라는 절창은 시인의 목숨이 더는 개인적인 생존이 아니라, 조국의 봄을 위한 제물임을 암시한다.

둘째 연은 공간을 북방 툰드라로 확장한다. “찬 새벽”은 암담한 시대의 상징이며,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라는 구절은 얼어붙은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올 자유와 독립의 봄을 기다리는 생명 의지를 상징한다. 여기서 ‘꽃’은 생명의 희망이자 조국의 부활이다. 더 나아가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이주조의 회귀 본능을 통해 망명한 조국의 자식들이 언젠가는 되돌아와 그 약속을 실현하리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라는 구절은 바로 민족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시인의 맹세이며, 그것은 어떤 외세나 절망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서약이다.

마지막 연은 그 시적 정조가 가장 뜨겁게 불타오른다.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시공간을 초월한 상상력으로 꽃이 성(城)이 되고, 그 꽃성이 바람결 따라 타오른다고 묘사한다. 이는 육사의 시세계가 단순히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상상력과 신화적 상징성을 통해 민족과 인간의 궁극적 구원과 자유를 형상화하는 탁월한 비전임을 보여준다.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는 자유의 꿈을 따라 떠도는 망령들이며, 시인은 그들을 부르며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는 정신적 응시를 펼쳐 보인다.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는 결말은 선언이며, 기도이며, 동시에 소환의 행위이다. 죽음을 앞둔 시인이 마지막으로 불러낸 꽃은, 결국 자신이 이룬 문학적 자화상이자 민족을 향한 붉은 고백이다.

이육사 시인의 삶은 한 줄 요약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족과 자유를 위해 저항의 삶을 살았던 그는, 감옥과 망명, 투쟁과 침묵 속에서 오로지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한 명의 시인으로 자기 존재를 새겼다. 그의 문학은 결코 회피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편에서 조국과 생명의 의미를 탐색하며, 동시에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에게 시는 장식이 아니었고, 삶은 곧 문학이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투쟁의 기록이자, 신념의 시학이며, 붉게 타오른 한 송이 ‘꽃’이다.

「꽃」은 그런 육사의 정신이 가장 농축된 시편이다. 자연의 생명력에 기대어 문명과 민족의 부활을 예언하고, 자신의 존재를 그 ‘꽃’ 하나로 승화시키는 이 시는 단순한 자연시도, 감상시도 아니다. 그것은 피와 눈물, 죽음과 사랑, 절망과 기도의 시학이다. 그리고 이 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꽃은 다시 피어야 하며, 그 꽃은 여전히 약속을 품고 있으며, 우리는 그 시적 맹세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이육사는 목숨보다 붉은 꽃을 피운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꽃 앞에서 다시 시를 읽는다. 시는 곧 기억이며, 맹세이며, 희망이기 때문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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