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청민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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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어디쯤일까
시인 청민 박철언
태양이 불고 있는 풍선으로 뜬 지구
둥근 한증막에 갇힌 숨소리들이
낭떠러지로 구르는 듯한 더위
엿가락 늘어지듯 이탈되는 의식들이
자꾸 허방을 닫는 한낮
빛깔도 속성도 놔버리고 싶어
휘어져 까무러치는 이름들
어디에서부터 엉켜
내려가는 바닥을 잊어버린 걸까
문명이 밟아버린 생태계가 아찔하다
땡별 폭염으로, 점점
갈 길 어지러운 갈증과 두통
지금은 더위의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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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시의 언어, 불꽃의 시학
― 박철언 시인의 삶과 시정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철언 시인은 한평생을 국가의 공직자로 살아왔다. 올곧은 정신으로 국가에 봉직하며 시대의 물결 속에서도 중심을 지킨 그는, 노년에 이르러 문학을 삶의 제2의 소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단순한 여생의 취미나 감상의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공직자의 눈으로 본 현실에 대한 통찰이자, 시인으로서 세상을 직시하는 정직한 언어의 선언이다. 그의 시에는 국가에 헌신했던 이의 경륜과 깊이,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과 시대에 대한 윤리적 긴장감이 함께 녹아 있다.
「폭염, 어디쯤일까」는 그 상징적 작품이다. 한때 국가의 중심에서 질서를 고민했던 시인은, 이제 문명의 가장자리에서 삶의 본질을 묻는다. 태양을 ‘불고 있는 풍선’이라 표현하는 시작의 이미지부터, 그는 언어를 수식이 아닌 본질을 꿰뚫는 도구로 사용한다. 이 말은 공직자의 공식 문장이 아닌 시인의 시선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 내면은 곧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 공공, 연대, 양심이라는 시대적 단어들을 문학의 방식으로 호출한다.
박 시인의 문학에는 삶의 두 층위가 교차한다. 공직자로서의 이력은 공공성의 척도를 가늠하는 눈을 길렀고,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은 그 척도를 인간의 숨결 속에서 실감하게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단순히 ‘더위’를 말하지 않고, “문명이 밟아버린 생태계”를 고발하며, “휘어져 까무러지는 이름들” 속에 정체성을 잃은 우리 사회를 묻는다. 이 질문은 다분히 윤리적이며, 동시에 철학적이다. 시는 날씨를 말하면서 인간을 묻고, 현실을 그리면서 진실을 겨눈다.
그는 시에서 국가를 논하지 않지만, 시 전체가 곧 공공을 위한 기도문처럼 읽힌다. 기후 위기를 단순한 자연의 반응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선택한 문명의 결과로 직시하는 그의 관점은, 단단한 공직자의 논리와 뜨거운 시인의 감정이 조화된 드문 사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박철언 시인의 문학은 독보적인 지평을 갖는다. 그것은 관찰이 아니라 성찰이며,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고발이고, 공감 그 이상의 책임을 담고 있다.
노년의 문학은 종종 회고적이거나 서정에 기운다. 그러나 박 시인의 언어는 회피가 아니라 직시이며, 현실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면 응시다. 그는 여전히 국가를 염려하고, 민생을 품으며, 자연의 울음을 귀담아듣는다. 공직자의 길에서 벗어난 지금도 그는 한 국가의 양심으로 살아 있으며, 그 양심은 이제 시라는 형식으로 타인을 깨운다.
“지금은 더위의 어디쯤일까”라는 마지막 행은 단순한 계절의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생태적, 윤리적, 문명적 좌표를 묻는 간절한 울림이다. 박철언 시인의 시는 단지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를 섬긴 이가 이제는 인간과 자연, 문명과 양심을 섬기는 방식으로 바꿔 쓴 봉사의 기록이다. 그의 시는 묵직하고도 투명하다. 무게를 지녔으되, 독자를 짓누르지 않고, 어둠을 통과하되 끝내 빛으로 이끈다.
그가 걷는 노년의 문학 길은 단순한 사색의 산책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 한 공직자의 시대적 갱신이며, 여전히 세상 속으로 향하는 열정의 방향이다. 그의 문학은 이제 국가를 위한 또 다른 봉사이자, 인간을 향한 정직한 애정의 문장이다. 그리고 그 시어들은, 지금 이 불타는 행성 위에서, 여전히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이 된다.
ㅡ 청람 김왕식
□ 오페라하우에서 박철언 시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