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밀 졸라의 불꽃같은 문학혼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왕식







나는 고발한다, 고로 존재한다

ㅡ 에밀 졸라의 불꽃같은 문학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에밀 졸라 Émile Zola. 그 이름은 문학의 언저리에 서 있는 자들이 함부로 들먹일 수 없는 불온한 진실의 표상이다. 단어 하나가 부조리한 체제를 흔들고, 문장이 하나의 혁명이 되었던 시대, 졸라는 펜 끝으로 사회의 흉부를 해부하고 그 중심에 핏물과 욕망과 진실을 덧칠하였다. 그는 ‘쓰는 인간’이었다. 기록자가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증인이자 고발자였다.

졸라의 삶은 프랑스 제2제국의 번성과 몰락, 공화국의 출현이라는 격동 속에 놓여 있었다. 그는 파리의 변두리에서 자라난 ‘변방의 아이’였지만, 그 시선은 언제나 중심을 향했다. 그의 20권짜리 대하소설 《루공-마카르 총서》는 그 중심에 인간을 놓는다. 피와 본능, 사회와 유전, 권력과 타락이 교차하는 인간 군상을 통해 그는 사회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로 그려냈다. 졸라에게 소설은 추상적 이상이 아닌, 현실의 맨얼굴을 재현하는 과학이었다.

그가 구축한 문학 세계는 단순한 사실주의를 넘어서 자연주의로 진화한다. 루공과 마카르라는 두 혈통은 각각 탐욕과 광기의 극단을 상징한다. 이는 피에 흐르는 역사이며, 세대에 이식되는 운명이기도 하다. 마치 술통에서 배인 향이 수백 번 씻어도 남아 있듯, 인간은 시대와 사회의 알코올에 절여진 존재라는 것. 졸라는 이 체계와 비극을 뿌리째 파헤친다.

그러나 졸라가 단지 차가운 관찰자만은 아니었다. 1898년, 그는 세상을 향해 "나는 고발한다(J'accuse...!)"고 썼다.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를 희생양 삼은 프랑스 군부의 불의에 대해 그는 외쳤다. 이 한 편의 글은 권력과 언론, 그리고 양심 사이의 균형추를 다시 흔들었다. 진실이 비틀릴 때, 작가는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학의 윤리. 졸라는 그 윤리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영국으로 망명까지 감행했다. 이는 그가 창조한 인물들보다 더 위대한 한 명의 인간상, 에밀 졸라 자신을 만든 순간이었다.

오늘의 세계는 더 이상 루공-마카르 가문의 이야기를 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탐욕과 광기, 편견과 차별 속에서 흔들린다. 오늘의 드레퓌스는 SNS의 언저리에서 조리돌림당하고, 오늘의 졸라는 입막음의 칼날 앞에 선다. 졸라의 문학이 현대에 주는 효용은 여기에 있다. 그는 문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증명했다. 문학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이불이 아니라, 정의를 향한 횃불이어야 한다는 것을.

졸라의 글은 마치 부러진 도시의 척추를 다시 세우는 외과의사의 손과 같다. 날카롭고 고통스럽지만, 치유의 시작이 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졸라를 번역하고 읽는 이유는, 그의 문학이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묻는다. "당신은 고발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졸라의 피가 당신의 펜에 흐르고 있다.


□ 졸라에게 바치는 시 한 편


나는 고발한다



청람 김왕식




나는 고발한다
잉크보다 무거운 침묵을
정의의 이름으로 태운
한 인간의 불꽃을.

검은 종이 위에
하얀 진실이 울었고
그 울음이 나라를 흔들었다.
그는 작가가 아닌
증인이었다.

피가 아니라 펜으로 싸운 사람,
전쟁보다 잔혹한
편견의 사막을 건너
외로움과 함께
런던의 밤을 맞이한 사람.

그가 쓴 문장은
총알보다 깊었고
침묵보다 분명했다.
루공-마카르의 피줄기를 따라
시대는 해부당하고
진실은 드러났다.

그는 인물들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낳았다.
욕망과 절망,
신념과 타락이 뒤섞인
인간이라는 이름을.

나는 고발한다,
그 외침은
한 세기를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보고도
아무 말 않고 있는가.


ㅡ청람




*에밀 졸라(프랑스어: Émile Zola, 1840년 4월 2일~1902년 9월 29일)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자연주의 조류의 수장으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에서 출판, 번역, 해석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가장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중 하나이다. 졸라의 소설은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수 차례 각색되기도 하였다.
졸라의 삶과 작품은 여러 역사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문학 구성에 있어 졸라는 특히 제2제국 시기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20권의 소설 대작, 수세대에 걸친 루공-마카르 가문의 역정을 보여주며 소설의 대상이 된 각각의 이들을 통해 시대와 특정 세대를 표현한 《루공-마카르 총서》로 알려져 있다.

졸라는 말년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898년 1월 일간지 "로로르"에 실으며 드레퓌스 사건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여 같은 해 런던으로 망명을 가기도 하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혜선 시인의 시 <서시 ㅡ 우리 하나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