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이안수 작가 세계 여행기
"Canadian은 다른 말로 자전거 타는 사람"
Ray & Monica's [en route]_369 | 밴쿠버 도심 숲 속에서의 한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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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밴쿠버에 발을 디딘 순간 거대한 자연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멀리는 거대한 산맥의 능선이, 가까이는 하늘 끝에 닿을 듯한 웨스턴 레드 시더(Western Red Cedar)와 더글러스 퍼(Douglas-fir)가 도로와 공원, 심지어 정원에까지 마치 백 년도 더 전에 그 땅에 있었던 주인으로서의 위용을 뽐낸다.
밴쿠버의 거리를 걷는 중에도 도시의 소음은 먼 곳의 옛 기억일 뿐이다. 숲을 지나온 부드러운 바람은 내 살결에, 피톤치드의 시더향은 코끝에 머문다.
우리를 초청해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을 내어준 Barnabas Choi 선생은 운동 마니아였다. 이분의 루틴은 일과 공부, 그리고 운동이다.
자전거 헬멧과 장갑을 거실 바닥에 나란히 놓고 말했다.
"Canadian을 다른 말로 정의하면 자전거 타는 사람입니다."
이분은 우리 몫의 자전거와 일체의 안전장구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다.
광활한 대지를 자전거로 누비는 것은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였다. 대도시뿐 아니라 소도시와 시골마을까지도 자전거 도로가 잘 연결되어 있어 안전하고 편리하게 탈 수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 또한 자전거와 연계되어 있어, 버스나 전철에 자전거를 쉽게 실을 수 있어 이동이 자유롭다.
최 선생은 우리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Real Canadian으로 만들 작정을 한 것 같다. 우리는 안전장구를 바르게 착용하는 법부터 안전하게 주행하고 브레이크 잡고 타고 내리는 법은 물론, 잘 넘어지는 법까지 기본부터 교육받고 자전거 도로로 나섰다.
자전거의 미덕은 내 근육을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두 다리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내가 살아있다는 기쁨을 환기시켰다.
우리가 도달한 버너비 Burnaby의 센트럴 공원 Central Park은 하늘로 뻗은 거대한 침엽수들로 원시림 속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두려움이 우리를 압도한다. 숲 속으로 10여 분 페달을 밟아 들어가면 어느새 두려움은 내가 도시에서 멀어진 것 같은 설렘으로 바뀐다.
자전거를 멈추고 가슴을 최대한 부풀게 숨을 마셔본다. 내 몸이 비로소 꽃이 피는 느낌이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멀어져 가는 아내의 작은 뒷모습을 비춘다. 더 작아지면 마치 나비로 우화할 것 같다.
웨스턴 헴록(Western Hemlock)은 수명을 다한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삶을 이어간다. 뿌리가 얕은 나무가 넘어진 뿌리의 반경 크기만으로도 경이롭다.
자연과 경쟁하거나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나의 존재가 절로 작아지고 단순해진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일부이고 특히 작은 일부여야 한다.
이 숲의 도시에서는 여느 도시에서 가졌던 생존을 위한 분투의 마음이 절로 가라앉는다. '절로 그러하는' 자연을 닮을 일이다.
#BarnabasChoi #밴쿠버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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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을 밟는 철학, 숲 속에서 만난 나의 속도
― 이안수 작가의 세계 여행기 단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단순한 체험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유랑의 수업에 던진 한 사람의 내면일기이자, 세계라는 교실에서 배우고 반추한 사색의 풍경이다. ‘Ray & Monica's [en route]’라는 타이틀 아래 펼쳐지는 이 여정은 이름 없는 길가의 풀 한 포기, 자전거 페달의 감각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철학적 감응의 기록이다.
그 가운데 밴쿠버 편, 《Canadian은 다른 말로 자전거 타는 사람》은 특히 인상 깊다. 작가는 도착 순간부터 이 도시를 ‘자연의 품’으로 받아들인다. 이곳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이다. 웨스턴 레드 시더와 더글러스 퍼는 그저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이 땅이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연대기이며, 작가는 그 앞에서 경외심을 감추지 않는다. 도시는 숲을 흉내 낸 공간이 아니라 숲이 도시의 바탕인 땅, 그곳이 바로 밴쿠버이다.
그 도시에서 만난 Barnabas Choi 선생의 한 마디는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Canadian을 다른 말로 정의하면 자전거 타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유머가 아닌, 삶의 방식에 대한 정수의 정의다. 캐나다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속도이며, 삶을 자연과 동기화하는 의식의 장치다. 작가는 이러한 감각을 체득하기 위해 배우고, 넘어진다. 넘어지는 법마저 배운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실천하는 여행자’다.
자전거를 타고 도달한 버너비의 센트럴 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도시의 구조에서 도려낸 숲이 아닌, 도시의 일부로 살아 있는 원시림이다. 작가는 그 숲을 지나며 자신 안의 ‘분투의 욕망’을 내려놓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내 몸이 비로소 꽃이 피는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육체적 운동이 정신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역설의 시구다.
그는 아내의 뒷모습이 나무 사이로 작아져 나비처럼 느껴지는 순간, 존재의 형이상학적 가벼움을 발견한다. 이 순간은 생태적 깨달음 이상의 상징이다. 인간 존재는 결코 자연을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자연의 숨결에 잠시 더해진 작은 입김이라는 통찰이다. 웨스턴 헴록이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뿌리내리며 삶을 이어가는 장면은 곧 인간이 자연에 기생하고 있다는 겸허한 자각으로 연결된다.
무엇보다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떠남이 아닌 ‘비우는 연습’이다. 세계 여러 도시를 전전하면서 그는 점점 더 단순해진다. 치열한 도시의 경쟁 속에서 벗어나, 숲의 도시에서 그는 자기 내면의 자연과 대면한다. 더 빠른 것이 능사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것이 살아남는다는 생태적 윤리가 그의 기록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의 여정은 풍경을 지나치지 않고 풍경과 함께 멈춰 선다. 페달을 멈추고 숨을 들이쉴 줄 아는 여행자, 그가 발견한 진짜 캐나다는 지도 위의 나라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존재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곧,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결국 ‘살아가는 기술’에 관한 서사다. 그 기술은 빠르게 달리는 기술이 아니라, 멈춰 서서 느낄 줄 아는 감각이다. 밴쿠버의 숲 속에서 그가 일군 자전거 한나절은 단지 자연 체험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의 새로운 정의였다.
자연은 길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따라 걷게 만든다.
그 길에서, 이안수는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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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보다 먼저 길이 되었다
― 이안수 작가에게
청람
낯선 도시의 바람이
네 가슴을 밀어줄 때
너는 걷지 않고
느리게 떠 있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는 두 바퀴의 철학,
자연은 너의 교실이었다
나무는 지시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너는 말을 줄였고
숨을 더 들이켰다
햇살이 아내의 어깨에 내려앉을 때
너는 삶의 속도를 늦췄다
웨스턴 헴록의 뿌리는
넘어진 나무 위에 피었고
너는 오래된 상처 위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바퀴는 굴렀지만
너의 마음은 멈추어 있었지
그 멈춤 안에서
너는 네 안의 도시를 해체했다
세계는 넓었고
너는 그 안에서 작아지길 선택했다
작다는 건
비로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너는 길 위의 시인이었고
나는 그 시를 따라
나도 나의 속도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는 나보다 먼저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