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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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엽서
시인 주광일
성치 않은 몸으로
견디어내는 무더위
하루
하루가
목숨을 건
싸움이구나
천둥 번개와
함께라도 좋으니
이 땅의 부조리
살인적인 무더위
남김없이
쓸어가는
큰 빗줄기
기다려 지누나
■
주광일 시인의 시『오늘 엽서』
― 법조인의 절의와 시인의 통찰이 빚은 뜨거운 진혼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시 「오늘 엽서」는 단순한 날씨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의 부조리와 싸우며 한평생 破邪顯正의 신념으로 살아온 노 시인의, 몸과 영혼으로 써 내려간 ‘존재의 일기장이자 시대를 향한 고발장’이다. 삶의 8할을 법조인으로 살아오며 옳고 그름 앞에서 단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자신을 밀어붙여 온 그의 삶은, 이 짧은 시 안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성치 않은 몸”이라는 구절은 단순한 병약함의 표현을 넘어선다. 그것은 노쇠한 육신을 안고도 꺾이지 않는 의지, 지쳐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한다. "견디어내는 무더위"는 단지 계절적 폭염이 아니다. ‘살인적인’이라는 수식처럼, 이는 이 땅에 도사린 온갖 비정상과 모순, 불의의 체제와 구조적 불공평에 대한 은유이다.
시인은 하루하루를 “목숨을 건 싸움”이라 말한다. 이 절박한 언술은 자신과 병마의 싸움이기도 하고, 동시에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살아온 법조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에게 ‘하루’는 생존의 단위이자 정신의 투쟁이며, 삶 그 자체가 곧 사법의 현장이자 시적 진실의 시험대였다.
“천둥 번개와 함께라도 좋으니”라는 구절은 도리어 폭풍우를 자청하는 의연한 선언이다. 이는 혼란과 격랑 속에서라도 기꺼이 부조리를 쓸어내고 싶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비를 통한 정화와 각성의 희구가 담긴 절절한 외침이다. 인간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단순한 더위의 불쾌지수가 아니라, 세상의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열병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꿰뚫는다.
마지막 연 “남김없이 쓸어가는 큰 빗줄기”는 치유와 혁신, 그리고 궁극적인 ‘새로움’의 도래를 예비한다. 시인은 그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가 응당 치러야 할 응보와 정화의 시간, 노정치와 부패한 권력, 외면과 타락으로부터의 대청소가 ‘큰 빗줄기’라는 이미지로 은유되어 있다.
이 시는 그 어떤 화려한 수사도 없이 직선적인 언어와 절제된 형식 속에서, 읽는 이의 가슴에 뿌리 깊은 떨림을 남긴다. ‘법조인’이라는 이성의 옷을 입고 살아온 이가, ‘시인’이라는 감성의 깃을 달고 남긴 이 작품은, 차가운 법전 위에 뜨거운 심장을 올려놓은 듯한 감동을 준다.
『오늘 엽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엽서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문장이다. 이 작은 시 한 편에, 정의의 냉철함과 시적 영혼의 온기가 함께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광일 시인의 문학은 곧 삶이요, 신념이자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삶의 마지막까지, 단 한 줄의 타협 없이 정의를 응시하는 눈빛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곧 ‘노 시인의 살아 있는 유언’이자, ‘마지막까지도 견고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찬가다.
ㅡ 청람 김왕식
□ 주광일 시인
1943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196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제5회 사법시험 합격하였다.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6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을 수료하였다.
검사로 있으면서 면도날이라고 불릴 만큼 일처리가 매섭고 깔끔하며 잔일까지도 직접 챙겨 부하검사들이 부담스러워했다. 10.26 사건 직후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돼 김재규 수사를 맡았으나 "개혁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원대복귀되기도 했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을 때 자신이 직접 언론 브리핑을 했던 인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 인천지방법원 집달관 비리 사건 등 대형 사건을 처리했다.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차장검사로 있던 1989년 9월 18일부터 나흘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지역법률가회의에 참석하여 '한국경제 발전 과정에 있어서의 외자도입법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있던 1992년 8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다닐 때 써두었던 사랑을 주제로 한 시 60편을 묶은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도서출판 빛남)라는 시집을 출판했다.
고충처리워원장의 공직을 마치고
지금은 변호사, 시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