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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물의 얼레를 당기며, 하늘로 시를 띄우는 몸의 예술가

권갑하 시인



□ 권갑하 시조시인




□ 권갑하 시인의 시조집 '겨울발해'




연을 띄우다


시조시인 권갑하






연을 날린다 광활한 발해의 하늘 위로

장백의 안개 헤치고 압록 두만도 훌쩍 넘어
적충된 연대 속으로
연을 띄워 올린다

여기가 어디인가 굽어보고 돌아보며

주름진 오욕의 역사 해진 상흔도 다독이며
가끔은 천둥 번개 불러
곤한 잠도 깨워가며

너무 높게는 말고 낮게는 더욱 말고

연바람 멈추면 노래도 멎고 말 것이니

당겨라, 팽팽히 얼레를
풀었다 다시 당겨라

오래 떠나 있어 낯설고 물설겠지만
내 어버이 온몸으로 일군 모토 아니던가
*다물 그, 돛을 올리듯
꼬리 긴 연을 띄운다


*다물은 '되찾다', '회복하다'리는 뜻으로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연호이자 건국이념이다.
삼국사기. 권 13 고구려 본기 동명성왕 편에 다물, 이는 고구려어로 고토회복을 뜻한다.








다물의 얼레를 당기며, 하늘로 시를 띄우는 몸의 예술가, 권갑하 시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권갑하 시인은 문장 이전에 몸으로 시를 살아낸 사람이다. 그는 말을 부리는 언어의 장인이 아니라, 신령한 감응 속에서 땅을 밟고 하늘을 읽는 예술적 주술사다. 그의 시는 책상 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길 위에서, 헐벗은 겨울 만주벌판의 바람 속에서, 민족의 망각된 뿌리를 따라 걷는 육체의 순례에서 비롯된다. 시조 「연을 띄우다」는 바로 그런 시인의 실천적 삶이, 정신적 고투가, 신의 바람을 기다리는 인간의 얼레가 한데 엮인 '시간의 기도'다.

첫 연에서 그는 연을 띄운다. 광활한 발해의 하늘 위로. 장백의 안개를 가르며 압록과 두만을 넘는다. 이는 단지 경계의 이동이 아니라, 한민족의 뼈아픈 상실과 분단을 넘는 의식의 도약이다.

“적충된 연대 속으로 연을 띄워 올린다”는 문장은 곧, 단절된 역사 속으로 육체를 찔러 넣는 작가의 염원이며, ‘되찾기’를 위한 다물(多勿)의 비상이다.
그는 실제로 그 땅을 밟았고, 그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글자를 눌렀다. 시는 회상도, 상상도 아니다. 그것은 몸의 기록이며 정신의 응결이다.

2연에서는 굽어보며, 돌아보며, 주름진 오욕의 역사를 응시한다. ‘다독이며’라는 동사는 그가 지닌 시인의 본성을 드러낸다. 상처를 덧내는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것. 분노보다 더 깊은 연민. 그는 울분보다 슬픔으로, 절규보다 속삭임으로 민족사를 호출한다.

가끔은 “천둥 번개 불러 곤한 잠도 깨운다”라고 했지만, 그것은 외침이 아니라 일깨움이다. 무너진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는 시를 통해 잠든 민족의 심장을 깨운다.

3연은 예술의 자세를 말한다. “너무 높게는 말고 낮게는 더욱 말고.” 이 절제와 조율의 시학은 단순한 미적 감각을 넘어, 삶 전체에 대한 태도다. 얼레를 당기고 다시 푸는 반복 속에서, 그는 자신과 세계의 거리를 조율한다. 연은 그의 시이며 그의 화폭이고, 얼레는 그의 호흡이며 기도의 손이다. 당기며, 풀며, 그는 인간의 무게와 신의 바람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야 비로소 예술은 하늘로 오른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다물’이라는 고대적 원형으로 회귀한다. 그것은 잊힌 땅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정체성을 회복하는 정신적 귀향이다. 그는 말한다. “내 어버이 온몸으로 일군 모토 아니던가.” 여기서 ‘모토’는 단순한 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원형이자 그의 존재적 좌표다. ‘돛을 올리듯’ 연을 띄우는 그는 바람을 기다리는 순례자이며, 방향을 믿는 항해자다. 꼬리 긴 연은 곧 한 시인의 운명이고, 한 겨레의 고백이다.

권갑하 시인의 약력은 독특하다.

신문사 기자, 농협의 교육자, 달항아리 화가, 초등 국정 교과서의 시인이자, 문단의 중추를 맡아온 실천가. 그의 삶은 단순한 예술인의 길이 아니었다. 글과 흙, 강단과 들녘, 비판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는 늘 '몸으로 기록하는 삶'을 살아왔다. 특히 2013년 겨울, 영하 20도의 만주에서 발해 유적을 밟고 써낸 시들은, 한국 현대시조가 외면해 온 역사적 감각을 되살린 귀중한 유산이다.

그의 화폭엔 하늘이 담기고, 그의 시엔 땅이 녹는다. 달항아리의 여백과 시조의 절제는 서로 통하고, 그림과 언어는 모두 다물의 얼레 위에 감겨 있다. '비움'으로 채우고, '침묵'으로 노래하며, 그는 예술을 존재의 증명으로 삼는다. 지금껏 그 어떤 시인도, 그렇게 신과 소통하듯 시를 쓰고, 발해를 향해 그렇게 연을 띄우지 못했다.

시인 권갑하는 오늘도 얼레를 당긴다. 잊힌 땅을 향해, 기억의 하늘을 향해, 시간의 심연을 향해. 그가 띄운 연은 곧 한국 시조가 다시 띄운 연이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민족의 실존적 고백이다. 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문장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물의 얼레를 함께 붙잡는 일이다.


한편, 오는 8월 11일 서울 예술가의 집에서는 권 시인의 신작 시조집 『마음꽃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두 번째 문학 좌담회가 ‘시조와 시대정신’이라는 제목 아래 열릴 예정이다. 이 자리는 한국 시조문학이 새롭게 질문해야 할 화두와, 그 답을 향한 탐색이 이어지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ㅡ 청람 김왕식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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