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을 읽고 ㅡ 시인 함민복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시인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 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시인



1962년 충청북도 충주시[11에서 태어났다. (63세)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을 발표해 등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4년 간 일한 이색 경력이 있다. 현재는 강화도에서 부업으로 인삼
가게를 하며 결혼해서 살고 있다




함민복 시인의 시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함민복 시인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품은 작가이다.

그의 시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은 2014년 4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비극으로 각인된 ‘세월호 참사’를 기리는 통곡이자, 한국 현대시 속에서 가장 치열하게 시대의 윤리를 묻는 시편 중 하나다. 시인은 문학의 사회적 책임과 인간적 연민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아온 시인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로 시작된 그의 시 세계는 단순한 현실 비판이나 관조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내면의 착함과 연대의 본성을 신념처럼 지켜온 삶의 시학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 시 또한 그의 일관된 가치철학—‘고통을 함부로 외면하지 않는 시’, ‘사람을 사람답게 호명하는 언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작품 속에서는 차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참극의 순간에 서로를 위해 움직이지 않으려 한, 이학년들의 순결하고 바보 같은 ‘착함’이 눈물겹게 펼쳐진다.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는 구절은 단순한 동작 묘사를 넘어, 위태로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어린 영혼들의 고요한 영웅성을 은유한다. 이 대목은 인간 본성의 선의善意가 가장 절박한 순간에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시인은 감정의 절제를 통해 울림을 극대화한다.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 나 혼자를 버리고 /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구절은 시대의 기만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지켜낸 존재들의 고귀함을 조용히 증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포를 견디었을 /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라는 절규는 세상의 모든 기만과 폭력에 대해, 시인이 품은 가장 깊은 슬픔과 분노를 날것으로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 시는 우리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성찰을 요청한다.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 우리 모두는…” 이후로 이어지는 시구들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을 묻는다.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 죄다”라는 단언은 시인의 윤리의식이 얼마나 뼈아픈지, 시를 읽는 이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함민복 시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슬픔을 노래함으로써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진 시대를 일깨우고, 공동체의 자성과 회복을 촉구하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엄마, / 아빠, / 사랑해!”라는 단 세 마디는 세상의 어떤 시어보다 처절하고, 간명하다. 이 절규는 비단 사라진 생명의 목소리가 아니라, 살아남은 우리가 두고두고 들여다보아야 할 ‘양심의 메아리’다.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이라는 시인의 절창은 우리 모두가 빚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도덕적 공기를 상징하는 메타포로서, 시의 마지막 줄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된다.

함민복 시인은 인간의 착함과 고통을 문학의 중심에 둔다. 그리고 이 시는 그가 걸어온 시인의 길과 삶의 철학, 문학의 소명에 가장 선연하게 부합하는 시편이다. 시는 울음의 언어를 통해 우리 모두의 시간을 다시 묻고 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독자 또한 ‘그 숨’ 앞에 고개를 숙이고,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것이 곧 문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위로이며, 존재의 증명일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




□■

함민복 시인은 196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노동의 땀과 가난의 숨결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아온 삶 자체가 하나의 시다.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경주 원자력 발전소에서 4년간 노동자로 일했던 그의 이력은, 한국 현대시단에서 드문 ‘현장 경험의 내면화’를 이룬 시적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을 걸으며,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을 발표하고 등단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문학이라는 고상한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삶의 바닥에서 시를 길어 올리는 치열한 자세로 일관되어 왔다. 현재 강화도에서 인삼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그의 삶은, 여전히 도시의 화려함보다는 자연과 고요 속에서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살아가는 한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시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은 바로 그러한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시편이다. 기성세대가 외면한 비극 앞에서, 시인은 “공포를 견디었을 /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을 부르며, 한없이 무력하고 죄 많은 어른들의 시간을 통렬히 반성한다.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 나 혼자를 버리고 /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이학년들의 윤리는, 시인의 평소 문학관—‘가장 착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와 정확히 일치한다.

함민복의 시세계는 현란한 언어 기법보다도 정직하고 깊은 인간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시는 언제나 노동과 가난, 착함과 연민의 세계를 품는다. 이 시에서 “엄마, / 아빠, / 사랑해!”라는 마지막 외침은 단지 비극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묵직하게 전달되는 도덕적 외침이며, 시인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영혼의 문장이다.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이라는 고백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껴안아야 할 시대의 양심으로 독자 앞에 던져진다.

현실의 밑바닥에서 눈물로 시를 빚고, 오늘도 강화도의 흙냄새 속에서 인간을 깊이 들여다보는 함민복 시인. 그의 시는 위로이자 질문이며, 진실한 삶의 증언이다. '성선설'에서 시작된 그의 시학은, 인간은 선하다는 믿음, 그리고 착함이 결코 바보스러운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투명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이 시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근원적 물음이 된다.

우리는 과연 이 시 앞에, 떳떳한가?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물의 얼레를 당기며, 하늘로 시를 띄우는 몸의 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