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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ㅡ 제2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제2편



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제2편

연탄불 켜는 날, 와이파이가 끊겼다






종로 2가 고샅을 따라 걷다 보면

양복점 간판처럼 반쯤 떨어진 철문에

‘장수이발관’이라는 페인트 글씨가 얼비친다.


50년을 넘긴 가게,

입구엔 검정 가죽 의자 두 개,

벽엔 단종된 헤어스타일 사진이 빛바랜 노란 테이프로 붙어 있다.


“이발소 냄새란 게 있다.

머리카락과 알코올, 사람의 체념이 섞인 냄새지.”

최봉수(55)는 골목 끝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이발을 맡긴 이는 장태준(78).

요즘은 ‘태준이 형’ 대신 ‘이발 로컬장인’으로 불린다.

대화는 짧고 손놀림은 정확했다.

이날은 달랐다.


“태준이 형, 연탄 왜 피웠어요?

이제 가스보일러 쓰는 세상인데.”


“오늘 와이파이 끊겼다며.

그거, 연탄 때문일지도 몰라.”


봉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연탄이 와이파이를 끊어요?”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MZ 냄새가 들어왔다.

크롭 패딩에 에어팟,

손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목에 문신은 없지만 눈빛은 스마트폰에 잠겨 있는 여자였다.


“여기서… 이발되나요?”


김하린(24),

근처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독립영화 대본을 쓰는 중이란다.

영화 속 인물에게 옛날 머리를 해주려

진짜 옛날 가게를 찾아온 것이다.


태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위 소리가 바람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 전체가 암흑으로 잠겼다.


“어라?”

“헐… 감성 이발소 콘셉트이에요?”


하린은 웃었지만

태준의 손은 멈췄고

봉수의 표정이 딱 굳었다.


“전기 나갔네.”

“연탄 때문이네, 그거. 연탄 피우면 누전 자주 나.

안전기준이 옛날 그대로니까.”


봉수가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꼭 연탄 피우고 싶었어.

누군가 기다릴지 몰라서.”


하린은 어두운 가운데 조용히 물었다.


“누구… 기다리세요?”


“40년 전,

내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던 학생 하나.

서울대 붙었다고,

나중에 꼭 다시 와서 머리 자르겠다고 했어.

근데… 군대 가고, 편지 한 통으로 연락 끊겼지.”


“그 후로 매년,

그날이 오면

난 연탄을 피웠어.

그 아이가 들어왔던 그 냄새 그대로.

혹시나 돌아오면,

시간이 멈춘 이 자리에 맞게 하려고.”


침묵이 가게를 눌렀다.


봉수가 말했다.


“기억은 기술보다 끈질기니까요.

사람은 와이파이 없어도 추억으로 연결되잖아요.”


그 순간, 전기가 돌아왔다.

형광등 아래,

하린의 머리는 반쯤 잘려 있었고

봉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지금이 딱 좋아.

지금 네 머리는,

시간을 반쯤 들여다본 머리야.”


하린은 거울을 보고 웃었다.

“이 머리, 내 영화에 그대로 써야겠어요.”



{“머리카락은 잘라도 다시 자라지만,

기다림은 한 번 끊기면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MZ(Millennials and Gen Z)

1980년대 초 ~ 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와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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