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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피맛골 사람들ㅡ 제3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제3편




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제3편
그 많던 장발들은 어디로 갔을까





종로2가, 유리창에 먼지가 눌어붙은
‘백운사진관’.
검정 글씨가 벗겨진 간판엔
‘즉석 사진’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요즘은
누구도 즉석으로 찍지 않는다.
사진이란 건 이제
앱이 보정해주고,
필터가 기억을 재단한다.

백운사진관은 살아 있다.
주인 박도식(68)은 여전히
카메라에 먼지 하나 없고,
액자 하나하나에 손을 대고 닦는다.

“요즘 애들은 렌즈보다 해시태그가 중요하단다.”
도식은 늘 그렇게 말하며
과거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

그날 오후,
우편 한 통이 도착했다.
봉투는 누렇게 바랬고,
보낸 사람란엔
30년 전 그가 알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 선배.
그때 찍은 졸업사진,
혹시 아직 갖고 계십니까?”

1983년 봄,
도식은 청람 예술고등학교 졸업반 사진 담당이었다.
그 시절,
젊은 피는 록 음악과 함께 흘렀고
장발은 저항이었다.

교문 앞마다 ‘장발 단속’이 있었고,
사복 형사가 머리칼로 이념을 가늠하던 시절.
도식은 동기들 몰래
장발을 그대로 담은 사진을
자신의 암실에만 간직했다.

사진 속
머리가 어깨에 닿을 만큼 길고
검정 셔츠를 입은 한 학생.
그의 이름은 문광호.
졸업 직전, 군입대 대신 행방불명되었다.

“그 친구… 살아 있었구나.”
도식의 손이 떨렸다.
그 순간,
사진관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검정 모자를 눌러쓴 채
기침을 연달아 했다.

“혹시… 백운사진관 맞습니까.”
도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낯설지만 낯익은 목소리.

그는 문광호였다.

“어디 갔다가… 지금 와?”
“해외. 독일, 오래 있었어.
다 말할 수는 없고…
사진이 필요했어. 내 마지막 기록이니까.”

광호는 벗은 모자 아래
휘어진 이마를 보이며 웃었다.

“장발은 사라졌고,
지금은 이마가… 평야야.
참 아이러니하지.”

도식은 서랍에서
조심스레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 순간,
30년 전의 바람 소리가
사진관 천장에서 내려앉았다.

광호는 사진을 받아들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무슨 소리야.
네가 장발 그대로 찍어달라 했잖아.”

“나만 있는 줄 알았는데…”
광호의 손가락이 사진 한 구석을 짚었다.

그곳엔
어깨에 손을 얹은
여학생이 있었다.
흑백 속에서도 또렷한 미소.
그건… 도식이 한때 좋아했던
반장 윤혜진이었다.

“네가 몰랐겠지만…
그날, 혜진이랑 같이 찍었어.
이게… 나의 마지막 사랑이었거든.”

도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랑도, 장발도, 시간도
다 말 없이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었다.


{“머리칼은 잘라야 자랐고,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자랐다.
그러다 둘 다,
한순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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