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울음, 여름의 심장 ㅡ 청람 김왕식

김왕식







매미의 울음, 여름의 심장




청람 김왕식




여름 한복판이다.
햇빛은 검은 그림자를 바닥에 눌어붙게 하고, 하늘은 멀고도 깊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투명하지만, 그 투명함 속에 눈부신 열기와 숨 막히는 정적이 함께 엉겨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 매미는 운다.

처음엔 그 울음이 단순한 소음처럼 들린다. 반복되고, 끊임없고, 귀를 때리는 날카로움.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 안에는 뭔가 더 깊은 것이 숨어 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듯, 아니면 애써 감추고자 하는 듯, 울음은 여름 내내 나무 위에서 흔들린다.

매미의 울음은 ‘노래’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그 소리는 마치 여름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한 방식 같다. 계절은 말이 없으니, 매미를 통해 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여름이 품은 지나친 열기, 숨죽인 기다림, 땀의 진실, 불현듯 찾아오는 소멸의 그림자. 그 모든 감정의 파편들이 매미의 울음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매미는 땅속에서 수년을 보내고, 그 짧은 생을 위해 기어이 지상의 빛을 향해 올라온다. 그것은 무언가를 ‘살아내기 위한’ 여정이며, ‘사라지기 위한’ 각오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온 매미는 오직 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의 언어이고, 생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 울음은 자기 존재의 끝을 향해 내지르는, 아름답고도 절박한 선언이다.

울음의 강도는 낮의 열기만큼이나 뜨겁고, 밤의 어둠만큼이나 깊다. 사람들은 무심히 그 곁을 지나치지만, 매미는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를 불러내는 소리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 ‘내가 있었다’고 새겨 넣는 유일한 흔적이기도 하다.

매미의 울음을 듣고 있으면, 문득 인간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의 ‘울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말로, 어떤 이는 눈빛으로, 또 어떤 이는 침묵으로 운다. 사람의 삶도 길어 보여도 실은 찰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노래처럼 들리고, 때로는 슬픔처럼 들린다.
본질은 같다. 그것은 결국 존재의 울림이며, 소멸의 예고이며, 마지막을 향한 빛나는 버티기다.

여름은 그래서 슬프다. 겉으로는 풍성하고 뜨겁고 생명력이 넘치지만, 그 속에는 이미 끝을 향한 불안과 서늘한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매미의 울음은 그 양면성을 통과해,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울음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느냐”라고.

아무도 보지 않는 숲 속 나뭇가지에 매달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울음을 내는 작은 생명체. 그러나 그 울음은 들린다. 그것은 한 여름의 심장이다. 계절이 가장 크게 고동치는 순간, 매미는 세상에 자기 생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울음은 노래이고, 동시에 슬픔이다. 존재의 환희이자 이별의 예고. 그것은 사랑하는 일이자, 떠나는 일이다. 그 모든 걸 담아 매미는 오늘도 운다. 여름은 그 울음을 꼭 안고 있다.

그 울음에 귀 기울이는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서 울고 있는 또 다른 매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 매미의 이름은,
그동안 묵묵히 버텨온 ‘나’ 자신일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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