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박철언 시인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ㅡ청람 김왕식

김왕식



청람문학회에서 박철언 장관의 문학 강의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




시인 청민 박철언




사랑도 기쁨도 희망도 함께하는
아직도 이만큼 건강한 삶

모두가 불행했던 전쟁 때문에
가난했던 소년 시절 지나
꿈을 조던 청장년 시절에는
꿈대로 새벽을 밝혔던 내 삶

비밀 출장 갈 때마다 수십 번 썼던 유서
정치 격류 속에 억울한 옥살이도 겪었지만
국가의 많은 큰 일 이뤄낸 공직 생활 삼십여 년

육십이 채 되기 전
모든 공직 버리고 돌아온
고향 집 어머니 품 같은 문학의 길
마침내 온전히 자유롭게
맑은 영혼, 불꽃같은 열정의 삶 이십여 년

그리하여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
언제까지 행복한 날일 수 있으려나



팔순의 잔치는 단지 숫자가 아니다
― 청민 박철언 시인의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는 단순한 기념의 노래를 넘어, 한 시대를 관통한 인생의 회고록이자, 깊은 성찰의 시적 증언이다.

여기서 ‘팔순’이란 단지 생애의 길이를 재는 수치가 아니라, 파란만장한 개인의 역사와, 그것을 견뎌낸 정신의 풍경을 뜻한다. 시인은 그것을 '잔치'라 부른다. 기념식이 아니라 '계속되는 잔치'로 선언함으로써,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의 축제라는 인식을 시 속에 새겨 넣는다.

이 시의 미학은, 과거를 영광으로 포장하지 않고, 슬픔과 고난마저 삶의 일부로 껴안는 진솔함에 있다. “모두가 불행했던 전쟁 때문에 / 가난했던 소년 시절”이라는 구절은 시인의 유년을 단순한 배경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운명을 집약한 증언이다. 시대의 상흔이 개인의 정서 속에 스며들고, 그것이 청장년기의 꿈과 현실을 부딪히게 만든다. 시인은 그 상처를 드러내되 비탄의 정서에 함몰되지 않는다. 외려, “꿈대로 새벽을 밝혔던 내 삶”이라 고백하며, 상흔 위에 스스로 빛을 더하려 했던 내면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비밀 출장 갈 때마다 수십 번 썼던 유서”라는 구절은, 시인이 공직자로서 살아온 삶의 긴장과 희생을 압축한다. 여기에는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은 무의미한 체념으로 흐르지 않고, “국가의 많은 큰 일 이뤄낸 공직 생활 삼십여 년”이라는 문장에서처럼, 국가를 위한 헌신과 사명으로 승화된다. 바로 여기에 시인의 삶의 철학, 곧 ‘공과 사를 분리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도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응축되어 있다.

이 시는 자서전적이되 자화자찬으로 흐르지 않으며, 개인을 통해 공공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사회적 울림을 지닌다.

이 시의 백미는 후반부, 곧 ‘문학의 귀환’에서 빛난다.
“육십이 채 되기 전 / 모든 공직 버리고 돌아온 / 고향 집 어머니 품 같은 문학의 길”—이 대목은 시인의 존재론적 전환을 함축한다. 과거가 외부를 향한 ‘국가적 책임’의 삶이었다면, 이후는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는 귀소본능’ 같은 삶이다. 문학은 단지 취미나 늦은 취향이 아니다. 시인에게 문학은 “맑은 영혼, 불꽃같은 열정의 삶” 그 자체다. 외부 세계의 격류를 지나, 내면의 고요 속으로 귀향하는 길. 문학은 그래서 시인에게 또 다른 공직이며, 또 하나의 봉사이다.

문학을 통해 시인은 마침내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선언한다. 이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해방이다. 고통을 뚫고 견딘 자만이 얻는 내면의 평화이며, 억압을 감내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고원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여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 / 언제까지 행복한 날일 수 있으려나”—
이 문장은 다짐이자 물음이고, 현재이자 미래다. 이 짧은 결구 속에서 시인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그 길 위에 아직 남은 발자국의 여운을 꺼내 놓는다. 그것은 인생의 결산이 아니라, 새로운 선언이며, 삶의 지속에 대한 고요한 확신이다.

결국,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적 세계는 '시대를 감당한 자의 언어'이며, '무게를 짊어진 자의 고요한 떨림'이다. 그는 팔순의 삶을 단순히 축하받는 잔치로 꾸미지 않는다. 외려 그는 묻는다. "이 삶은 얼마나 더 빛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시인의 문학적 미의식과 철학이, 삶의 끝이 아닌 ‘다시 쓰는 서문’에서 시작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로 이어진다.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는 말은 결국, 삶의 잔잔한 승리를 알리는 선언이다. 모든 시련을 이겨낸 자가 비로소 누릴 수 있는 평화, 그리고 그 평화 속에서 피어나는 늦깎이 꽃 같은 문학. 그리하여 이 시는 한 인생의 귀한 축복이자, 한 세대가 기억해야 할 시인의 삶의 증언으로 오래 남는다.


청민 박철언 시인은
우리 시대 노년의 길에 찬란한 본보기를 남긴 보기 드문 인물이다.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소수만이 도달하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로, 장관으로, 변호사로
한 시대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했지만,
그 이면엔 깊은 책임과 고독이 있었고,
겸허하게, 묵묵히, 흔들림 없이
공적 사명을 감당해 낸 삶이었다.

진정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그 모든 경력을 내려놓고
육십이 채 되기 전, 스스로 권력의 자리를 떠나
문학이라는 또 다른 깊은 길로 들어섰다는 데 있다.

지금 그는 시인으로서
바람처럼 유유히, 그러나 깊고 단단하게
삶의 진실을 노래한다.
그의 시에는 고난이 있고, 성찰이 있으며,
오랜 세월을 건너온 자만이 말할 수 있는
겸손과 평화가 배어 있다.

화려한 타이틀보다,
끝내 자신을 비워낸 한 사람의 지혜로움.
그는 오늘도 보여준다.
진짜 성공은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어디로 돌아가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청민 박철언 시인—
그 이름은 이제 단지 한 인물이 아니라,
모든 노년이 닮고 싶어 하는
품격과 자유의 상징이다.


ㅡ 청람 김왕식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박철언 시인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매미의 울음, 여름의 심장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