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장동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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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장미
시인 장동석
가슴 깊이 가시를 감추고
벌 나비 떼 유혹하는 고혹적인 자태
한낮의 햇살이 절정에 다다르면
자신의 몸을 활활 불살라
온 들을 빨갛게 빨갛게 물들여놓고
바람결에 향기를 날리며
남몰래 애간장 태운 마음
붉은 선혈로 떨어뜨리네
누구를 향한 고운 빛깔일까
그 사랑이 고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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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으로 피어나는 고혹, 들장미의 시학
― 장동석 시인의 '들장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론
장동석 시인의 '들장미'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 내면의 진실한 감정과 존재의 정수를 시적 형상으로 끌어올린 밀도 높은 작품이다.
언뜻 들판의 꽃 한 송이를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스스로를 태워 세상을 물들이는 존재의 아름다움, 사랑의 고통, 그리고 절정에서 사라지는 비의적 삶의 철학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첫 연에서 들장미는 단순한 식물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등장한다.
“가슴 깊이 가시를 감추고 / 벌 나비 떼 유혹하는 고혹적인 자태”—
여기서 들장미는 이미 자연을 넘어선 상징이다. 가시를 지닌 채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자태는, 상처를 품은 인간의 내면이자, 아픔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열린 영혼의 메타포이다. 이는 시인이 지닌 삶의 관조적 태도를 반영한다.
시인은 언제나 삶의 외형 뒤에 숨겨진 본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들장미의 '가시'는 단순히 방어적 장치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의지이며, 동시에 고통 속에서도 끝내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자기희생의 징표다.
이어지는 둘째 연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시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한낮의 햇살이 절정에 다다르면 / 자신의 몸을 활활 불살라”—
들장미는 절정에서 스스로를 태운다. 여기서 시인은 자연의 리듬 속에서 피어나는 '자기 소멸'의 미학을 끌어올린다. 그 불꽃은 단순히 생의 끝이 아니라, ‘온 들을 빨갛게 물들이는’ 생명의 절정이다.
이는 곧 사랑하는 존재의 자세이며, 시를 쓰는 자의 운명이기도 하다. 사랑이든 창작이든, 그 정점은 ‘자기 불살라 타오름’이며, 그 불꽃은 타인을 환히 밝히기 위해 존재한다. 장동석 시인은 이를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견뎌온 사람이다. 스스로의 삶을 태워 문장을 만들고, 시 한 줄로 타인의 마음을 물들여온 시인의 자화상이 이 들장미 안에 오롯이 투영된다.
셋째 연은 정서의 절정을 조용히 끌어내리며 시의 깊이를 더한다.
“바람결에 향기를 날리며 / 남몰래 애간장 태운 마음 / 붉은 선혈로 떨어뜨리네”—
여기서 들장미는 더 이상 외적으로 피어난 꽃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을 지닌 ‘존재자’로 완성된다. 애간장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지 못한 채 향기로만 전하고, 결국 그 사랑을 ‘붉은 선혈’로 떨어뜨리는 존재의 고독이자 숭고함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인이 품은 미의식을 읽게 된다. 장동석 시인은 사랑을 거창한 감정의 폭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결에 묻혀오는 향기처럼, 언뜻 지나치기 쉬운 순간 속에서 가장 깊은 감정이 스며드는 것임을 말한다. 그것은 문학이 가장 높은 경지에서 보여주는 '절제의 미학'이자, 시인의 내면이 품은 철학이다.
마지막 연은 그 모든 감정의 여운을 남긴 채, 독자에게 조용한 질문을 건넨다.
“누구를 향한 고운 빛깔일까 / 그 사랑이 고와라”—
이 마무리는 설명이 아니라 여운이며,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시인은 모든 것을 보여준 뒤, 가장 중요한 해석을 독자에게 맡긴다. 이는 문학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존중이며, 독자와의 교감이라는 문학적 윤리를 향한 깊은 배려다.
요컨대, '들장미'는 장동석 시인의 시세계가 응축된 결정체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단정하지만, 그 안에는 불꽃같은 열정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시인은 단지 꽃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피어나고, 불타고, 지는 존재의 모든 과정을 시 속에 담아냈다.
그 흐름 속에서 ‘고운 사랑’이라는 가장 순결한 가치를 남긴다.
장동석 시인의 문학은 늘 그렇다.
소박한 소재 안에서 가장 순도 높은 진실을 끌어올리고,
절제된 문장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을 노래한다.
'들장미'는 바로 그런 시인의 영혼이
한 송이 붉은 꽃으로 피어난 순간이다.
하여
이 시는 단지 자연시가 아니다.
그것은 시인 자신의 삶이며,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뜨거운 사랑의 은유다.
마침내,
그 사랑은 참 고운 것이라 말해주는
조용하고 깊은 위로의 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