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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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아, 너는 영원할 수 없다
청람 김왕식
폭염아, 이제 그만 자리를 내어라.
마치 세상의 끝인 듯 온 대지를 삼키며,
숨이 턱에 닿을 만큼 달아오른 열기로
사람과 나무, 짐승과 새까지 헐떡이게 만드는 너.
너는 지금의 절정을 정복이라 착각하겠지만,
자연은 누구에게도 영원한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한낮의 아스팔트 위를 걸어본 적 있느냐?
열기를 토하는 도로 위에 꺼진 신발 자국,
그 위로 쓰러지듯 자라는 나팔꽃 하나.
그 생명 하나가 뿜는 청량한 숨결이
너의 뜨거운 오만을 비웃고 있는 줄은 아느냐.
지붕 없는 공장, 그 속의 노동자들이
한 모금의 물에도 감사하며 견디고,
무더운 교실의 아이들조차
땀에 젖은 교복을 쥐어짜며 미래를 준비한다.
그 모두가 조용히 말한다.
“조금만 참자, 곧 지나갈 것이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입추立秋가 지나면 첫 이슬이 내리고,
처서處暑 즈음이면 밤바람이 바뀌고,
백로白露의 안개를 지나
한로寒露의 서늘한 기척이 들릴 즈음
네 정점은 한순간의 추억이 되리라.
마침내 동짓달.
그날엔 겨우살이의 구슬 같은 숨결이
맹렬하던 여름을 조용히 덮어줄 것이다.
서리 맺힌 창가에, 김이 서린 문틈에
너의 이름 석 자는 아득히 잊힐 것이다.
폭염아, 넌 강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언제나 그랬다.
세상의 모든 강함은
자기 자신을 삼키는 열병처럼
스스로 무너지는 법.
겨울을 이긴 여름은 없다.
불길은 이내 꺼지고,
땀은 이내 말라
결국 모두, 계절이라는 시의 행간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손님일 뿐이다.
다시 말한다.
폭염아, 조금만 기다려라.
동짓달에도 네가 살아있을 것 같으냐!
세월은 너보다 더 강하고,
자연은 너보다 더 오래 참는다.
인간은 너보다 더한 절망도
묵묵히 견뎌낸다.
가라, 폭염아.
그 자리는 이제 서늘한 그늘의 것이니.
너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다만 잠시, 기록 속의 숫자로 남을 뿐이다.
그 누가 가장 강한가 묻는다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라 말하리.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