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소엽 박경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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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
시인 소엽 박경숙
너무나 먼 길을
달빛 밟으며 걸어왔구나.
그믐에 빚어
보름달에 태어나
어머니 손금 묻은
가만히 만져 보면
울 아가 얼굴처럼
따뜻한 온기가 묻어난다.
바람 품은 너에게
눈 감고 귀 기울이면
조근조근 이야기 들린다.
어머니의 심장 소리
듣는다.
내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어머니가
빚어내던
딸의 딸들이
그 언제 인가는
가슴에 잠들었던 기억을 꺼내어
온전한 생명을 잉태한다.
수줍은 아이
눈망울처럼
별 하나 품은
너는
내 차가운 가슴에
열정의 풀무질하는
숨소리를
듣는다.
■
가슴으로 빚은 그릇, 영혼으로 길어 올린 시
— 소엽 박경숙의 '빗살무늬토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한 편의 시로 피어날 때, 그것은 단순한 문학을 넘어선 정신의 형상화이다. 소엽 박경숙 시인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로 그러한 결의 작품이다. 찻자리에 생을 두고, 토기와 눈을 맞추며, 손끝으로 마음을 다려온 시인의 일생이 이 시에 스며 있다. 그는 찻잔 하나도 흙의 심장이라 여겼고, 그릇 하나에도 수천 년을 담는 애틋함을 부여한 이다.
하여, 이 시는 ‘그릇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그릇이 노래한 시인’의 고백이라 하겠다.
“너무나 먼 길을 / 달빛 밟으며 걸어왔구나.”
첫 행은 토기의 존재를 시간 너머에서 호출한다. 시인은 빗살무늬토기를 단순한 유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달빛을 밟고 온 존재, 역사의 발자국을 따라 묵묵히 이 자리에 도달한 ‘살아 있는 것’이다.
토기를 향한 시인의 시선은 경외와 친밀, 그 사이를 정교하게 오간다. 그믐의 적막 속에서 빚어진 흙이 보름달처럼 부풀며 탄생하는 순간, 토기는 시인의 가슴 안에서 이미 인간화된다. 이는 곧 ‘태(胎)’의 이미지로 확장되어, 생명의 상징이 된다.
“울 아가 얼굴처럼 / 따뜻한 온기가 묻어난다.”
여기서 토기는 곧 자식이고, 어머니이며, 생명을 잉태한 자궁과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단순한 사물의 찬미를 넘어, 시인은 토기를 품에 안고 숨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다.
이는 존재의 뿌리를 더듬는 영적 귀환이며, 흙이라는 소재가 인간 존재의 근원과 이어지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박경숙 시인의 시선은 정적인 감상이 아닌, 시간과 존재의 맥락을 통과하는 능동적 사유로 확장된다.
“딸의 딸들이 / 그 언젠가는 / 가슴에 잠들었던 기억을 꺼내어 / 온전한 생명을 잉태한다.”
이 대목은 시 전체의 정점이자, 작가의 삶의 철학이 집약된 구절이다. 시인은 유구한 여인의 계보를 통해 ‘토기’라는 사물에 모성적 기억을 부여하고, 그 기억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부활시킨다. 이는 단순한 시상의 전개가 아니라, 찻자리를 생의 수련으로 삼아온 시인의 생활 미학, 즉 ‘살아온 방식이 곧 시가 된다’는 문학관의 표출이다.
마지막 연에서 토기는 별 하나를 품은 수줍은 아이로 등장한다. 시인은 그 토기를 차가운 가슴에 안고, 풀무처럼 뜨거운 숨을 얻는다. 이 장면은 시인이 일생 품어온 ‘찻자리’의 상징성과도 맞닿아 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숨결이요, 토기는 그 숨을 담는 존재다.
박경숙 시인이 수십 년간 손끝으로 따뜻한 삶을 우려내고, 정갈한 자리에서 토기를 벗처럼 마주한 시간들이, 이 짧은 시 속에 농축되어 있다.
그녀의 시는 복잡한 수사를 피하고, 담백한 문장과 온유한 리듬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 안에 담긴 철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생의 무게와 시간의 결, 모성의 울림과 기억의 복원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시는, 삶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차꽃과도 같다.
요컨대, '빗살무늬토기'는 단지 시인이 토기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토기가 시인을 불러낸 작품이다. 시인은 흙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사람’을 잊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소엽 박경숙의 문학적 미의식이며, 찻잔을 생의 의식처럼 대하던 그의 삶의 철학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도, 토기 안의 숨소리처럼 오래 남는 것.
시인은 바로 그것을 품고 있었다.
그 숨결은 지금, 이 시를 읽는 이의 가슴에도 차근차근 스며들고 있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