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인의 시 '봄비'를 읽고 ㅡ청람 김왕식

김왕식




이 시는

주광일 시인이 30년 전

쓴 글이다.



봄비




시인 주광일





가버린 그대 못 잊어
잠 설친 이른 새벽
문득 하늘 보고파
창 밖을 내다보니
아 소리 없이 봄비
내리고 있었구나
그대 영혼
나 못 잊어
나와 함께 있었구나





주광일 시인의 시 '봄비'를 읽고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주광일은 고귀한 인간애와 종교적 신념을 시 속에 깊이 새겨온 시인이다.
한평생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실현하며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다.

그의 삶은 고통 속에서도 끝내 품격을 잃지 않는 내면의 자세로 일관되어 왔으며,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 일관된 미학적 기조를 제공한다. 주광일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삶과 죽음, 이별과 기다림, 그리움과 기도 사이의 경계를 애틋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며, 시 〈봄비〉는 그 절제된 감정과 내면적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대표작 중 하나다.

“가버린 그대 못 잊어”로 시작되는 이 시는 이별을 초월한 존재적 사랑을 품고 있다. 여기서 ‘그대’는 단순한 인간의 관계를 넘어선, 삶의 근원이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 대상이다. 그리움은 감상적이지 않고, 차분하고도 단단하게 배어 있다. 이어지는 “잠 설친 이른 새벽”은 내면의 동요를 절묘하게 보여주며, 시적 자아가 아직도 그 존재에 묶여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인은 여기서 개인적 상실을 보편적 슬픔으로 승화시켜, 독자 각자 마음속 상실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접속된다.

“문득 하늘 보고파”에서 하늘은 단지 자연이 아닌 영혼과의 교감, 초월적 통로로 나타난다. 바로 이어지는 “창 밖을 내다보니 아 소리 없이 봄비 내리고 있었구나”라는 구절은 이 시의 절정으로, 절제된 감정 속에서도 깊은 정서의 파문을 일으킨다.
봄비는 계절의 비가 아닌, 그대의 영혼이 다시 이 세계를 찾아온 표상으로 읽힌다. 눈물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기억이 스며드는 방식이며, 세상의 어떤 소란도 방해할 수 없는 순결한 사랑의 언어이다.

결구에 이르러 “그대 영혼 나 못 잊어 나와 함께 있었구나”라는 진술은, 그리움이 단지 추억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적 동행으로 전환되는 전언이다. 떠난 이의 부재 속에서 외려 더 깊이 함께 살아가는 존재론적 통찰을 전하는 이 구절은, 주광일 시인이 일생 동안 추구한 ‘기억의 공동체’, ‘사랑의 영속성’이라는 시적 세계관을 함축한다.

시인 주광일 시의 미학은 간명한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영적 깊이, 일상의 순간을 신비의 장으로 바꾸는 시적 감각에 있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의 시편은 항상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사이에 흐르는 투명한 빛을 지닌다. 특히 봄비와 같이 자연을 매개로 한 상징은, 독자에게 정서적 위안과 철학적 사유를 동시에 열어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삶과 죽음을 수없이 넘나들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일군 주광일 시인의 이 작품은, 단순한 이별의 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깊은 사랑과 영적 연대, 기억의 신성함을 담은 고결한 서사다. 그런 점에서 〈봄비〉는 시인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가장 정직하게 담아낸 한 편의 기도요, 문학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ㅡ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엽 박경숙의 '빗살무늬토기'를 읽고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