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던 이름, 윤동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집

제목 『그리움은 사람을 살린다』
– 사람을 껴안는 시, 시인을 안아주는 평론




프롤로그

“시를 해석하지 않겠습니다.
시를 껴안겠습니다.”


나는 늘 질문을 받는다.
“시를 어떻게 해야 잘 해석할 수 있나요.”
나는 시를 해석한 적이 없다.
그 사람의 고통을 대신 안아본 적은 있어도,
그 시를 쪼개 분석해 본 적은 없다.
나는 시를 바라보기보다,
그 시인을 바라보는 사람이고 싶다.

문학은 삶의 응어리를 말로 푼 것이다.
그 말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석이 아니라, 공감과 회복이다.

『그리움은 사람을 살린다』는
문학이 사람을 품어내는 힘을 믿고 쓴 책이다.
이 책은 ‘작품’보다 ‘사람’이 먼저인 책이며,
‘비평’보다 ‘위로’가 더 절실한 시대에 바치는
따뜻한 평론, 조용한 혁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당신의 내면에 오랫동안 외면했던 ‘그 사람’을
조용히 껴안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움은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이 책은 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2025년 여름
청람 김왕식




✦ 목차




제1부. 한 줄의 떨림으로 사람을 살다
ㅡ시인을 먼저 읽고, 시를 껴안다

1. 〈서시〉 윤동주 –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던 이름
2. 〈진달래꽃〉 김소월 – 꽃이 되지 못한 사람의 울음
3. 〈향수〉 정지용 – 돌아갈 수 없는 고향보다, 나를 그리워하다
4. 〈님의 침묵〉 한용운 – 사랑보다 더 고요한 불교
5. 〈농무〉 신경림 – 들판의 춤, 민초의 통곡




제2부. 조용히 꺼내 본 상처 하나
ㅡ존재의 밑바닥에서 쓰인 시들


6.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 죽음보다 가까운 고독
7. 〈알 수 없어요〉 한용운 – 시도 말도 아닌 절규의 침묵
8. 〈유리창〉 정지용 – 슬픔이 빛을 통과할 때
9. 〈꽃〉 김춘수 –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의 기적
10. 〈풀꽃〉 나태주 – 조용한 사랑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제3부.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인 시
ㅡ가장 순한 문장, 가장 깊은 울음

11.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 밥은 먹었니, 그 말이 시가 되기까지
12. 〈수선화에게〉 정호승 – 부서지며 피어나는 생의 시
13. 〈가을의 기도〉 김현승 – 익어가는 존재의 길목에서
14.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 산문보다 진한 별빛의 일기
15. 〈사평역에서〉 곽재구 – 기다리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제4부. 시가 내게 건넨 편지 한 장
ㅡ해석이 아니라, 삶을 바꿔놓은 시들

16. 〈고요〉 백석 – 모든 시끄러움 뒤에 남는 것
17.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 상처받았기에, 꽃이다
18. 〈우리는 서로에게〉 박노해 – 노동과 연대, 가장 고운 문장으로
19.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 감정이 말을 배우기 전의 얼굴
20. 〈그대가 조국〉 – 사람 하나가 나라가 되는 순간



□ 에필로그






제1편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던 이름, 윤동주』
― 시 〈서시〉를 읽고, 윤동주를 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별 하나 삼키고, 시 한 줄을 꺼내던 사람


윤동주는 언제나 밤을 좋아했다.
낮에는 조용했고, 밤에는 더욱 조용했다.
연희전문학교 기숙사 시절, 그는 자주 운동장을 홀로 거닐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숙사 동료 정병욱은 그런 그를 보며
“동주는 별을 꿀꺽 삼키는 놈 같다”라고 말했다.

윤동주는 별을 보며 걷다가,
하늘을 보며 웃다가,
다시 돌아와 노트에 시를 적었다.
하루에 시 한 줄도 쓰지 못한 날이면
그는 죄를 지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별 하나 삼켜야
시 한 줄이 나오는 것 같아.”
그가 웃으며 한 말이었다.

그는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웃을 때도 언제나 말끝이 조용했고,
편지를 쓸 때도
수신인의 이름을 부르기 전
자기 마음의 떨림을 먼저 가라앉혔다.

정병욱에게 쓴 유서 같은 편지에서는
스스로를 “양심 앞에 떨고 있는 사람”이라 고백했다.
그의 시는 말의 기교가 아니었다.
살고자 하는 마음,
살면서 부끄럽지 않으려는 애씀,
그것이 언어가 되지 않으면 그는 잠들지 못했다.

1943년,
윤동주는 일본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정확한 혐의는 알려지지 않았다.
고문을 당했다는 정황,
강제 실험의 의혹,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묻혀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6개월 앞둔 때였다.
정병욱은 그의 유고 시집을 편집하며
이 시를 가장 먼저 배치했다.
“그는 이 시로 자기 삶을 살았고,
이 시로 삶을 마쳤다.”

이제 우리는 그 시를
해석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마주 서서
천천히 꺼내 읽는다.



□ 시 원문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시 평론

이 시는 다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유서이다

윤동주는 시의 첫 줄을
‘죽는 날까지’로 시작한다.
삶의 다짐이 아니라
죽음을 미리 앞세운 이 시작은,
그가 매일매일 부끄러움 앞에서 살았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하늘을 우러러’라는 표현은
그에게 신앙의 자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의 양심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었다.
하늘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를 비추는 절대의 거울이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는 구절은
윤동주 시의 핵심이다.
잎새는 작고, 바람은 스친다.
그 작은 떨림에도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
감각이 무뎌지지 않으려는 사람.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그 예민함을 지키려는 사람.
윤동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외우지만,
그 외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한 줄의 ‘괴로움’을
우리가 지금도 느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는 별을 사랑했지만,
별은 그저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었다.
별은 이상이고,
죽어가는 것은 현실이었다.

윤동주는
이상만 바라보지 않았고,
현실만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상을 품은 눈으로
죽어가는 현실을
사랑하려고 애쓴 사람이었다.

죽어가는 것들,
말하지 못하는 것들,
잊혀가는 생명들.
그 가운데 자기 자신까지도
그는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시인의 사명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여기서 ‘길’은
선택이 아니라 부여받은 것.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 길이 외롭고, 고통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아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 말 한 줄이
오늘의 독자에게
무엇보다 단단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 대부분은 그 길을
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바람은 여전히 스쳐 간다.
윤동주는 그 별이 되어
지금도
우리 가슴 한켠을 조용히 스치고 있다.

시인은 떠났지만,
별이 된 그의 말은
오늘도 누군가의 고개를 들게 만든다.
‘나, 괜찮은가’라고
스스로 묻게 한다.




하늘을 보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껴안는 사람이다


윤동주는
시로 살았고,
시보다 먼저 괴로움을 품었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의 시를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당신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가?
하늘을 우러러본 적이 언제인가?
별을 삼키지 못해
시 한 줄을 쓰지 못했던
그 사람의 고요한 고백이
오늘 밤,
당신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면
당신은 아직, 괜찮은 사람이다.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광일 시인의 시 '봄비'를 읽고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