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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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시인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십자가 아래 피어난 꽃, 울동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오늘, 당신의 '십자가'를 읽었습니다.
첫 구절에서 숨이 멎었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이,
그토록 따스하던 빛이
십자가 꼭대기에 걸려 멈추어 버렸다는 그 한 줄에서,
가슴이 깊이 가라앉았습니다.
당신이 본 빛은 단순한 햇빛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건 자유였고, 조국이었으며,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내일이었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당신이 닿을 수 없는 첨탑 위에서 멈췄습니다.
종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숨 쉬는 법마저 잊게 만드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그 아래에서 당신은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그 휘파람이 얼마나 쓸쓸하고,
얼마나 뜨거운 저항이었는지를.
말이 금지된 세상에서
당신은 바람으로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건 울음을 감춘 노래였고,
쓰러지지 않으려는 숨이었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죽음과 고통, 억울한 희생을 ‘허락’이라 부르다니요.
그 단어 앞에서 무너집니다.
누군가는 목숨 걸고 피하려는 것을
당신은 조용히 받아들였습니다.
이 얼마나 순결한 결심이며,
얼마나 눈부신 체념입니까.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여기서 더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피는 증오로 붉지 않았습니다.
그건 짓밟힌 양심이었고,
말 못 한 사랑이었고,
끝내 지켜낸 시인의 언어였습니다.
어두워 가는 하늘 아래,
그 피는 고통이 아니라 꽃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몸부림이,
가장 고운 꽃잎이 되어 흩날렸습니다.
후쿠오카 형무소,
굳게 잠긴 창살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 때,
당신은 그 빛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습니다.
그 빛은,
연희전문 교정에서 당신을 따라오던 바로 그 햇빛이었을까요.
끝내 십자가 위에 걸려 멈췄던 그 빛.
당신은 두 해가 넘도록 그것을 품었습니다.
피로, 시로,
끝까지 지켰습니다.
울동주.
당신의 이름 앞에 울음을 붙이지 않고는 부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나의 시인이자,
이 땅의 양심입니다.
당신이 남긴 한 편의 시,
한 줄기 피가
내 가슴속에서 뜨겁게 꽃을 피웁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당신을 마음속에 세우기를 바랍니다.
종소리 없는 시대에도,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끝내 서성거리며 휘파람을 불던 청년.
그 청년이 어둠 속에서 피운 꽃은
아직도 시리도록 붉고,
향기는 세월을 넘어 우리를 감쌉니다.
당신이 지고 간 십자가 위에 걸린 햇빛이
이제는 우리의 눈물 속에 비칩니다.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오늘도 그 아래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당신을 부릅니다.
당신의 시는
피 한 방울이자, 숨 한 번이자, 마지막 눈빛입니다.
그 피는 종이에 스며 아직도 마르지 않았고,
그 숨은 구절마다 살아서
우리 가슴을 두드립니다.
당신이 품었던 그 햇빛을
우리가 대신 붙잡겠습니다.
십자가 아래 흘린 피로 피운 꽃을
우리가 꺾지 않겠습니다.
그 꽃이 시리고도 향기롭게
이 땅 위에서 영원히 피어 있도록
우리 가슴을 밭으로 내어놓겠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각자의 십자가 앞에 설 때,
당신처럼 조용히, 그러나 떳떳하게
“허락된다면”이라 말할 수 있기를.
그날, 우리 모두의 피가 꽃이 되어
당신 곁에 피어나기를.
그렇게,
당신이 기다린 종소리가
마침내 우리 귀에 울리기를.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