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위상과 역사적 울림 ㅡ 시인 허만길

김왕식








장편서사시 '아버지의 애국'
ㅡ문학적 위상과 역사적 울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만길 문학박사(시인·소설가·복합문학 창시자)의 장편서사시 '아버지의 애국'은 2023년 발간된 시집 『역사 속에 인생 속에』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2025년 8월호 월간 『한국국보문학』에 ‘광복 80주년 특선’으로 재수록되었다.

작품은 허만길 박사의 부친 허찬도(1909~1968)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펼친 항일 독립운동과 선각적 계몽활동을 서사시 형식으로 담았다. 읽는 순간, 시가 어떻게 민족의 심장을 이토록 격렬히 뛰게 할 수 있는가를 체감하게 된다. 이는 한 개인과 한 가정의 기록을 넘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시대의 숨결이며 오늘까지 이어지는 정신의 메아리다.

현대 한국 시단에서 장편서사시는 드문 장르다. 시는 대개 압축된 감정과 순간의 울림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만길 시인은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개인 서사를 시적 언어로 능숙하게 직조했다. 시와 서사, 기록과 정서를 결합한 이 작품은 ‘다층적 문학 구조’의 완벽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주인공 허찬도는 열 살 때 부친과 함께 3·1 운동에 나섰고, 부친은 체포되었으며 어린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녀야 했다. 이 비극적 서두는 작품이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상흔의 시학’을 구현하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아래 소학교 교장에게 야학 설치를 건의해 희망자를 모았다. 2년 6개월간 이어진 야학은 무지한 민중에게 빛을 전하려는 계몽의 실천이었다. 당시 사용된 신명균의 『노동독본』 3권(조선교육협회 발행)은 단순한 교재를 넘어, 역사와 사회의식을 심어주는 창이었다.

농민의 가뭄 해결을 위해 양수기를 설치하려다 일본 경찰관 구로다의 방해로 옥고를 치른 사건은 ‘저항’과 ‘공공성’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이어 일본 교토부 사카이시 아사히철공소에서 ‘조선인친화회’를 조직해 동맹파업으로 무기공장을 멈춘 일은 서사의 긴장과 극적 밀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오쿠보 비행장에서 매제와 함께 노무자로 일하던 그는 강제징병을 당했고, 시가켄 훈련소에서 병을 앓으며 군의장에게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설파했다. 마침내 병역 해제증을 받고 귀향한 일까지, 그의 애국 행보는 시공을 가리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작품의 역사성을 강화하며, 한 인간의 행적을 민족사의 장면 속에 또렷이 자리매김시킨다.

시인은 부친의 생애를 통해 민족이 겪은 모멸과 절규를 상징화한다. 허찬도 선생의 삶은 곧 ‘민족 자각의 역사서’다. '아버지의 애국'은 단순한 기억의 예술이 아니라, 후대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애국정신의 유산임을 선언한다. 독립된 오늘에도 이 서사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문학이다.

시인은 부친의 생애를 통해 민족이 겪은 모멸과 절규를 상징화한다. 허찬도 선생의 삶은 곧 ‘민족 자각의 역사서’다. '아버지의 애국'은 단순한 기억의 예술이 아니라, 후대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애국정신의 유산임을 선언한다.

이 장편서사시는 시간의 벽을 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정신의 통로가 된다. 허찬도 선생이 걸었던 길은 단지 한 개인의 투쟁이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민족의 발자취와 맞닿아 있다. 그 발걸음은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저항의 불꽃이었고, 절망 속에서도 끝내 굽히지 않은 인간의 존엄이었다.

허만길 시인은 이를 시어로 되살려,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골짜기에 숨겨져 있던 빛을 드러냈다. 그는 문학이 역사에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시가 어떻게 국가적 기억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지를 이 작품으로 증명했다.

'아버지의 애국'은 읽는 이를 단순한 독자가 아닌 ‘증인’으로 세운다. 그 증언의 자리에서 우리는 과거를 직시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향해 책임 있는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은 단지 눈물의 감동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이며, 침묵을 거부하는 외침이다.

이 서사시는 광복의 기쁨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님을 일깨운다. 그것은 오늘의 자유와 내일의 평화를 지탱하는 뿌리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의 영토다. '아버지의 애국'은 바로 그 뿌리를 잊지 않게 하는, 우리 시대 가장 값진 문학적 유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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