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앞에서 멈춘 동심의 목소리 ㅡ임준빈 시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풀리지 않는 질문



시인 임준빈



직지 공부를 하며
많은 것이 궁금했어요

밤이면 달님에게 물어봤어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 왜 고향에 못 오는지

아빠에게 물어봤어요
세계 언론인들이 모여
천년에 발전을 이룬 100가지 사건을 정했는데

독일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42행 성서는 우리 민족의
금속활자본 직지보다
78년 늦은데도 세계인들은
왜 1등으로 우뚝 서야 할
직지를 가려놓아 빼버렸는지

엄마에게 또 물어봤어요
억울함을 다 알면서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시는지

달빛이 훤히 내려다보는
저녁 무렵
동구밖으로 엄마 아빠는
내 손을 꼭 잡고 한참을 걷다가
말문을 열었어요

네가 좀 더 크면
자연히 그 까닭을 알게 될거야
라고 하셨어요

대답을 속시원히
못해주시는 엄마 아빠가
야속했어요

달님도 훌쩍훌쩍 슬퍼했어요.







풀리지 않는 질문
ㅡ ‘직지’ 앞에서 멈춘 동심의 목소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임준빈 시인의 '풀리지 않는 질문'은 동시의 형식을 빌려 쓰였으나, 그 안에는 한 시인의 평생에 걸친 ‘직지 사랑’과, 역사적 진실을 향한 간절한 호소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 아이가 부모와 달님에게 묻는 순수한 질문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랜 세월 외면당한 문화유산의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깊은 의지가 숨어 있다.

시의 첫머리에서 화자는 ‘직지 공부’를 하며 느낀 궁금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세상에 알려진 사실과 실제 역사 사이의 불일치에 대한 깨달음이다. “밤이면 달님에게 물어봤어요”라는 구절은 질문이 향하는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달은 변함없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존재이지만, 대답을 주지 않는 침묵의 목격자이기도 하다. 그 앞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가 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묻는 장면은, 역사적 상실과 문화 주권의 문제를 아이의 눈높이로 포착한 대목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더 구체적이다. “세계 언론인들이 모여 천년에 발전을 이룬 100가지 사건을 정했는데”라는 서술 뒤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성서와 직지를 비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시인은 78년이나 앞선 우리의 금속활자가 세계사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얻지 못한 현실을 지적한다. 동시라는 간결한 틀 속에서도, 세계사 속 불공정과 편견의 구조를 직설적으로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그 표현은 분노나 공격성이 아니라 ‘왜?’라는 열린 물음으로 유지된다.
이것이 임준빈 시인의 작품 미의식이다. 그에게 시는 분노의 성명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엄마에게 던지는 세 번째 질문은 작품의 정서적 축을 이룬다. “억울함을 다 알면서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시는지”라는 물음은 단순히 직지 문제를 넘어, 역사적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현실과도 맞닿는다. 여기에는 ‘지켜야 할 가치와 침묵의 무게’라는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시인은 이를 고발하듯 적지 않고, 부모의 손을 잡고 걷는 장면으로 연결한다. “네가 좀 더 크면 자연히 그 까닭을 알게 될 거야”라는 부모의 대답은 완전한 해명이 아니라, 성숙의 문턱에서 맞이해야 할 현실의 무게를 예고하는 암시다.

마지막 장면에서 “달님도 훌쩍훌쩍 슬퍼했어요”라는 구절은 감정의 여운을 길게 남긴다. 달이 우는 모습은 불가능한 환상 같지만, 아이의 시선에서는 가능한 진실이다. 이는 곧, 세계사 속에서 잊히거나 가려진 진실이 ‘달빛 아래’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상징한다. 달빛은 직지를 향한 그리움이자, 세월을 넘어 변치 않는 증거의 빛이다.

이 작품에서 임준빈 시인의 가치철학은 분명하다. 그는 역사를 단순히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록의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다음 세대에게 질문을 남기는 사람이다. 동시라는 형식은 그 질문을 ‘공부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전환시켜, 독자들이 방어적 태세를 풀고 직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시인은 과장된 수사 대신 소박한 일상어를 사용해, 역사적 주제를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언어로 옮겨놓았다.

'풀리지 않는 질문'은 직지를 ‘돌려받자’는 직접적 요구보다, ‘왜 직지는 그 자리에 없을까’라는 의문을 전한다. 이 물음은 독자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임준빈 시인이 오랫동안 직지를 품고 살아온 방식이다. 그에게 직지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정신적 문패이며, 잃어버린 주인의 이름을 되찾아줄 역사적 빛이다.

결국 이 시는 한 편의 동시이면서도, 세계 문화사와 민족 정체성, 그리고 진실을 향한 집요한 물음이 교차하는 문학적 선언문이다. 시인이 남긴 질문은 풀리지 않은 채 우리 앞에 서 있다.
그 질문은 언젠가 반드시 풀려야 할 숙제이기에, 우리는 달빛처럼 끊임없이 직지를 비추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가 독자에게 전하는 가장 깊은 당부다.

ㅡ 청람 김왕식

□ 임준빈 작가의 저서 <직지 상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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