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철학 우화집ㅡ《등불을 향한 나무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우화는

1990년대 말

서울 오산고등학교 문예담당 교사를 할 때

6개월 간

습작한 글입니다.





■ 청람 김왕식 철학 우화집




《등불을 향한 나무들》



청람 김왕식




프롤로그
―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





숲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나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감지되는 깊은 울림이다. 바람이 가지 사이를 스치며 내는 숨결, 흙 속에서 뿌리들이 서로를 붙드는 보이지 않는 대화, 꽃이 피어내는 짧은 환희와 열매가 남기는 긴 약속.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생태의 풍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대한 은유이다.

이 책 『등불을 향한 나무들』은 그 숲의 목소리를 한 권의 이야기로 엮어낸 철학적 우화집이다. 표면적으로는 나무들이 햇살을 차지하기 위해 가지를 뻗고, 뿌리로 서로를 이어주며, 겨울의 고통을 견뎌내고, 봄에 꽃과 열매를 피우는 단순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인간이 수천 년 동안 되묻고 답해온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숨어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숲은 그 물음에 대해 장황한 언어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침묵과 상징으로 가르친다. 가지는 경쟁을, 뿌리는 사랑을, 겨울은 고통을, 꽃은 해방을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문명과 제도로 이 질문을 덮어왔지만, 숲은 늘 같은 진실을 들려준다. “삶은 높이에 있지 않고, 깊이에 있다.”

현대의 우리는 눈부신 발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도시의 건물들은 숲의 나무들보다 훨씬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 높이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인다. 성공은 정상에 닿는 순간 공허로 바뀌었고, 부와 권력은 인간의 내면을 채우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질문한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바로 이 자리에서 『등불을 향한 나무들』은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 가지의 다툼이 아니라 뿌리의 대화 속에서,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견뎌내는 겨울 속에서, 그리고 꽃과 열매를 통해 공동체를 살리는 봄 속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이 책은 어린아이에게는 동화로 읽히고, 청년에게는 자기 성찰의 거울이 되며, 어른에게는 오랜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철학서가 된다. 나무들의 삶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인간의 실존 전체가 압축되어 있다.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프롤로그를 여는 지금, 독자는 숲의 입구에 서 있다. 가지를 뻗는 숲을 지나 뿌리의 대화 속으로, 겨울의 고통을 견디며, 마침내 꽃과 열매의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은 단지 나무들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걸어야 할 삶의 길이다.

숲은 말한다.
“더 높이 오르려 하지 말고, 더 깊이 뿌리내려라.”
“혼자 빛을 차지하려 하지 말고, 함께 빛을 나누어라.”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라.”
“너의 꽃은 너만을 위해 피지 않고, 세상을 살리기 위해 피어난다.”

이제 우리는 그 숲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 한다.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은 단순한 자연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진실이며, 우리가 붙들어야 할 희망의 언어다.
ㅡ 청람




1부. 1장.
ㅡ하늘을 향한 가지들


아침 햇살이 숲을 비추자, 나무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태양은 곧 생명이었고, 빛을 차지하는 만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숲은 겉보기에 평화로웠지만, 그 속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지는 옆 나무의 햇살을 가로막았고, 잎은 경쟁하듯 넓어졌다. 높이 솟아오른 나무는 승자의 영광을 누리는 듯 보였지만, 그 자리에는 고독과 바람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묻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오르는가?”
그저 앞에 있는 나무가 오르니, 옆의 나무도 따라 올랐고, 땅에 남아 있는 것은 실패처럼 여겨졌다. 숲의 질서는 언제나 같았다. “높이, 더 높이.”

어느 어린 나무, 푸른 잎도 그 무리에 있었다. 그는 아직 작았지만, 누구보다 빨리 위로 오르고 싶었다. 가지를 억지로 위로 뻗어 올렸으나, 굵고 큰 나무들에 가려 빛은 잘 닿지 않았다. 푸른 잎은 안타까움과 분노로 가지를 떨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위에 닿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 저기만 오르면 빛이 내 것이 될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가지는 무거워졌다. 바람이 불면 쉽게 휘청였고, 빛은 여전히 닿지 않았다. 위를 향한 오름은 끝이 없는 고통일 뿐이었다. 정상에 오른다 해도, 그 자리에 무엇이 있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숲의 다른 나무들은 푸른 잎의 고뇌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도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는 옆 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리며 자리를 확보했고, 또 어떤 나무는 땅속의 뿌리를 무리하게 뻗어 다른 나무를 약하게 만들었다. 숲은 생명으로 가득했으나, 그 이면에는 끝없는 경쟁과 탐욕의 풍경이 숨겨져 있었다.

푸른 잎은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정상의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높이 올라 태양을 독차지하는 듯 보였으나, 잎사귀는 바람에 찢겨 있었고, 줄기는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고독은 땅 아래 어린 나무들보다 더 깊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서로는 멀어졌고, 가까이 기대어 설 수 있는 나무가 없었다. 정상은 빛이 아니라 허무의 자리였다.

그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정말 저기가 빛인가? 혹시 빛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닐까?”

이 질문은 작고 미약했지만, 푸른 잎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숲의 법칙은 오로지 위를 향해 가지를 뻗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법칙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은 곧 사유였고, 사유는 곧 각성이었다.

그날 밤,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푸른 잎은 부러질 듯 휘청거리며,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어둡지만 신비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땅속에서 서로 얽히고 닿으며,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는 뿌리의 그림자들. 위에서는 서로를 막아내던 나무들이, 아래에서는 서로를 붙들고 있었다.

푸른 잎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빛은 꼭 위에서만 오는 게 아닐지도 몰라. 나무들은 뿌리에서도 살아가고 있었구나.”

이 깨달음은 푸른 잎을 멈추게 했다. 더 높이 오르려던 조급한 발버둥은 잠시 멎고, 그는 땅을 응시했다. 아직은 답을 다 알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삶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1부 2장
― 비워진 정상의 그림자


숲의 가장 높은 곳, 하늘 가까이에 닿은 나무들은 스스로를 승자라 여겼다.
아래의 나무들이 빛을 얻지 못해 몸부림칠 때, 이들은 온전히 햇살을 받으며 서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빛을 차지했고, 가장 넓은 잎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발견한 것은 뜻밖에도 고독이었다.

정상은 혼자가 되는 자리였다. 가까이에 기댈 나무도 없었고, 바람을 함께 막아줄 이도 없었다. 강한 폭풍이 몰아치면, 아래의 나무들은 서로 가지를 부딪히며 버텼지만, 정상의 나무는 홀로 맞아야 했다. 햇살은 충분했으나, 그 빛은 오히려 외로움을 더 깊게 드리웠다.

높이 오른 나무들은 처음에는 뿌듯했다.
“나는 이 숲에서 가장 강한 존재다. 나는 승리자다.”
그러나 그들이 정상에서 마주한 것은 기대했던 충만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허무의 그림자였다. 빛을 독점했지만, 그 빛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고, 비는 잔인하게 내리쳤다. 줄기가 꺾여도 붙들어줄 뿌리와 가지는 멀리 아래에 있었다.

그들은 문득 깨닫기 시작했다.
“더 높이 오른다는 것이 정말 승리일까? 왜 나는 이토록 불안한가?”

푸른 잎은 땅에서 이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자리에 선 나무들의 잎은 찢겨 있었고, 가지는 마른 듯 무거웠다. 겉으로는 빛을 독차지한 듯했지만, 그 안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땅에서 떨어져 고립된 또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정상에 오른 나무들은 결국 알았다. 빛은 많았지만, 나눌 수 없기에 오히려 무의미했다. 홀로 소유한 빛은 금세 바람에 씻겨 나갔고, 비에 잠겼으며, 태양이 기울자 사라졌다. 빛은 나눌 때만 살아 있었다.

숲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작게 살아가는 풀과 덤불조차, 서로를 덮고 바람을 막아주며 작은 햇살을 함께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상의 나무는, 가장 높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 어떤 안식도 누리지 못했다.

이 장면은 숲의 법칙을 거꾸로 증명하고 있었다.
성공은 정상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정상은 비어 있는 자리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승리와 성취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행복이 기다릴 것 같았지만, 정작 그곳에는 고독과 허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잎은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정말 저곳을 향해 가지를 뻗어야 하나? 빛을 독차지하는 것이 정말 삶의 목표일까?”

그의 질문은 단순히 나무의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숲을 넘어 인간의 질문이었다. 인간은 왜 그렇게 끊임없이 오르는가? 정상에 도달했을 때 무엇을 얻는가?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진정 행복한가?

푸른 잎은 여전히 답을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꼈다.
정상에 선 자들의 모습은 결코 닮고 싶은 풍경이 아니었다.
빛을 얻었으나 빛을 잃은 얼굴, 성공했으나 행복하지 않은 자리.
그것이 바로 비워진 정상의 그림자였다.



1부 3장
―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


푸른 잎은 여전히 어린 나무였다.
그의 가지는 작았고, 잎사귀는 성글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오르고 싶어 했다. 숲의 모든 나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높이 오르지 않으면 빛을 잃는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정상의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혼란에 빠졌다.
빛을 가장 많이 받는 그들의 가지는 부러져 있었고, 잎은 갈라져 있었다. 바람에 맞서 홀로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은, 빛을 얻은 승자가 아니라 고독한 죄수와도 같았다. 푸른 잎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바람이 숲을 흔들었다. 가지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고, 잎사귀들은 서로를 덮으며 떨고 있었다. 푸른 잎은 눈을 감은 채 속으로 물었다.

“정말로 빛은 위에만 있는 걸까? 왜 모두 저곳을 향해 가는 걸까? 저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그를 괴롭혔다. 숲의 질서는 단순했다. 위로 오르라. 살아남으려면 오르라.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균열이 생겼다. 만약 정상에 기다리는 것이 허무라면, 지금의 경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다음 날 아침, 그는 곁의 나무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오르는 거야?”
옆 나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모두가 오르니까. 빛은 위에 있으니까.”
푸른 잎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면 무엇을 얻는 거지?”
그러자 옆 나무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불편한 듯 가지를 흔들었다.
“그건 올라가 본 자들만이 알겠지. 하지만 묻지 말고 올라가. 그것이 숲의 법칙이야.”

그러나 푸른 잎은 그 대답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법칙이라 불리지만, 사실 누구도 그 끝을 보지 못한 채 오르고만 있었다. 정상에 도달한 나무들은 대답을 내리지 못했고, 아래의 나무들은 여전히 위를 바라보며 뻗기만 했다.

푸른 잎은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따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단지 습관일지도 몰라. 모두가 오르니 나도 오르려는 것일 뿐. 하지만 그것이 정말 삶의 목적일까?”

그의 가슴은 두려움과 동시에 설렘으로 뛰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낯설고도 자유롭게 만들었다. 질문은 곧 자유의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푸른 잎은 더 이상 위만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서로의 뿌리가 얽히고 닿으며,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햇살을 향해 치열하게 가지를 다투는 위의 숲과는 전혀 다른, 고요하고도 단단한 세계.

푸른 잎은 속삭였다.
“혹시 진짜 빛은 땅에서도 자라는 게 아닐까? 위로만 오르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몰라.”

이 의문은 아직 답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질문을 던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푸른 잎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숲의 무리 속에서, 그는 더 이상 무조건 위를 향한 오름의 법칙에 안주하지 않았다.

“왜 오르는가.”
그 물음은 작았지만, 숲 전체를 흔들기에 충분한 씨앗이 되었다.




2부. 5장.
ㅡ땅속의 비밀


푸른 잎은 더 이상 위만 바라보지 않았다.
정상의 허망한 그림자를 본 그는, 땅을 내려다보았다. 어둡고 고요한 그곳은 처음에는 공포처럼 느껴졌다. 햇살도, 바람도, 새들의 노래도 닿지 않는 세계. 그러나 눈을 오래 두자, 그 안에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뿌리였다.

뿌리는 깊은 흙 속에서 서로 얽히고 이어져 있었다. 어떤 뿌리는 옆 나무와 맞닿아 물을 나누었고, 또 어떤 뿌리는 멀리 떨어진 나무에게 영양분을 보내주었다. 위에서는 가지들이 서로의 빛을 가로막고 싸우고 있었지만, 땅속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푸른 잎은 놀라움에 속삭였다.
“빛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막던 나무들이, 뿌리로는 서로를 살리고 있었구나.”

그는 뿌리의 대화를 들으려 귀 기울였다. 말소리는 없었지만, 물줄기의 흐름과 흙의 진동 속에서 분명한 교감이 있었다.
“너의 갈증을 내가 채워줄게.”
“네가 흔들리면 내가 붙들어줄게.”
“우리 모두 함께 살아야 숲이 살아난다.”

푸른 잎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숲은 단지 경쟁의 무대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이미 서로를 살리는 거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진짜 숲의 힘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었구나. 뿌리에서 이어지는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래전에 쓰러졌을 거야.”

푸른 잎은 점점 마음이 달라졌다. 더 이상 위를 향한 오름이 삶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옆 나무에게 가지를 부딪히며 싸우기보다, 뿌리로 서로를 붙들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이파리를 가진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 역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그의 뿌리는 푸른 잎의 뿌리와 맞닿아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만남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황금 이파리는 고요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가지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뿌리로는 이미 이어져 있어.”

푸른 잎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실제로 그의 뿌리 끝에서는 황금 이파리의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땅속의 물이 서로를 타고 흘러, 두 나무의 몸을 동시에 적셨다.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순간 푸른 잎은 알았다.
빛은 혼자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누릴 때 진짜 의미가 된다는 것을. 뿌리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숲은 서로를 밟아 이기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붙들며 살아내는 공존의 집이었다.

푸른 잎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이제 가지로만 살지 않으리. 뿌리의 언어를 배우고, 뿌리의 사랑으로 살아가리.”

그의 눈에 숲은 더 이상 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경쟁의 전쟁터처럼 느껴지던 숲이, 이제는 거대한 대화의 장처럼 다가왔다. 뿌리 아래에서 흐르는 대화는 비밀스럽고 은밀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숲의 진짜 심장이었다.

푸른 잎은 깨달음을 안고 속삭였다.
“숲은 뿌리에서 시작하고, 뿌리에서 이어진다. 뿌리의 사랑 없이는 그 어떤 가지도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2부 6장
― 서로를 살리는 물줄기


푸른 잎은 어느 날, 뿌리의 세계에 더 깊이 귀 기울였다.
흙 속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흘러가는 물줄기의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햇살을 받지 못한 작은 나무의 뿌리로 물이 흘러가고, 병든 나무의 뿌리에 영양분이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숲 전체가 하나의 몸처럼, 보이지 않는 핏줄을 통해 서로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서로 빛을 가로막고 싸우는 동안, 뿌리들은 서로를 살리고 있었구나.”

푸른 잎은 황금 이파리의 나무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물을 보내는 걸까? 자기만 쓰기에도 부족할 텐데.”
황금 이파리는 미소 짓듯 잎을 흔들며 대답했다.
“숲은 혼자가 아니야. 내가 살아남으려면, 네가 살아야 해. 우리가 함께 땅을 붙들어야 비로소 숲이 무너지지 않지.”

푸른 잎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처음으로 숲이 단순히 ‘개인의 싸움터’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뿌리가 흘려보내는 물줄기는 단순한 자원의 교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숲이 살아가는 사랑의 언어였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 숲의 작은 나무 하나가 뿌리째 흔들리며 쓰러질 위기에 놓였다. 그 순간 푸른 잎은 땅속에서 이상한 힘을 느꼈다. 주변의 굵은 뿌리들이 작은 나무의 뿌리를 감싸며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물을 내어주고, 흙의 힘을 함께 모았다. 결국 작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고 다시 뿌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푸른 잎은 감동에 젖어 속삭였다.
“뿌리는 말없이 서로를 살리고 있구나. 저 작은 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혼자 힘이 아니라, 숲 전체의 힘이었어.”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빛은 위에서 내려오지만, 생명은 땅속에서 나눈다. 가지의 경쟁은 순간적이지만, 뿌리의 나눔은 영원하다. 숲은 경쟁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탱되는 집이었다.

푸른 잎의 뿌리도 점점 더 깊어졌다. 어느새 그는 땅속에서 황금 이파리의 뿌리와 닿아 있었다. 흙 속을 타고 흐르는 물이 서로를 지나며, 두 나무의 몸을 함께 적셨다. 푸른 잎은 처음으로 느꼈다.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기쁨을.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더 이상 가지로만 살지 않으리. 나도 내 물을 흘려보내고, 다른 나무를 살리는 뿌리가 되리라.”

숲은 여전히 위에서는 경쟁으로 요란했지만, 아래에서는 고요히 서로를 지켜내고 있었다.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숲의 진짜 심장은 바로 그곳에서 뛰고 있었다.

푸른 잎은 눈을 감고 그 물줄기의 소리를 들었다.
그 속삭임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를 살릴 때, 숲은 영원히 푸르다.”





2부 7장
― 푸른 잎과 황금 이파리


푸른 잎은 어느 날, 바람에 흔들리다 문득 옆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 나무의 가지에는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잎사귀가 달려 있었다.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그의 잎은 욕심내어 하늘을 찌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제 자리에 앉아 햇살을 받아내며, 바람에 고요히 흔들릴 뿐이었다.

푸른 잎은 그 나무에게 이름을 붙였다. 황금 이파리.
황금 이파리의 빛깔은 단순히 색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존재는 어쩐지 따뜻했고,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푸른 잎은 자신도 모르게 그 곁에 오래 시선을 두곤 했다.

어느 날, 푸른 잎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너는 왜 가지를 위로 더 뻗지 않는 거야? 다른 나무들은 모두 더 높이 오르려 하는데.”
황금 이파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충분히 빛을 받고 있어. 위로 오르다 보면, 오히려 이 작은 빛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푸른 잎은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늘 정상만을 바라보며 가지를 뻗어왔지만, 정작 그곳에서 허무와 고독만을 보았다. 그런데 황금 이파리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멈춤과 만족, 그리고 현재의 충만함.

시간이 흐르면서, 두 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물을 나누었고, 서로의 힘이 되어 주었다. 푸른 잎은 점점 황금 이파리의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그를 고요하게 하고, 동시에 깊은 힘을 주었다.

어느 날 바람이 거세게 불어 숲이 크게 흔들렸다. 가지들이 부딪히며 소란스러웠고, 몇몇 나무들은 부러져 쓰러졌다. 그러나 푸른 잎은 놀랍게도 두려움을 덜 느꼈다. 땅속에서 황금 이파리의 뿌리가 자신을 붙들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나를 지켜주는 뿌리가 함께 있어.”

푸른 잎은 점점 깨달았다.
사랑이란 단순히 위를 향해 가지를 뻗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뿌리를 이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지탱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멀리 떨어진 두 나무가, 땅속에서는 하나의 생명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황금 이파리는 말했다.
“푸른 잎, 너는 위로 오르려는 질문을 했지. 하지만 나는 이제 알았어. 진짜 삶은 높이에 있는 게 아니야.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 그것이 가장 큰 빛이야.”

그 말은 푸른 잎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힘이었다. 가지는 여전히 흔들리고, 바람은 여전히 불었지만, 뿌리로 이어진 그 사랑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푸른 잎은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더 이상 홀로 오르지 않으리. 나는 황금 이파리와 함께, 뿌리의 길을 걸으리. 사랑이야말로 숲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니까.”

그 순간 숲은 전과 다르게 보였다. 가지들의 다툼 속에서도, 뿌리의 대화와 사랑은 조용히 숲 전체를 붙들고 있었다. 푸른 잎과 황금 이파리의 만남은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숲이 들려주는 더 깊은 진리의 시작이었다.





2부 8장
― 보이지 않는 대화


푸른 잎은 점점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오직 위만 바라보며 가지를 뻗었지만, 이제는 땅속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흙 속에서 흐르는 미묘한 울림, 물줄기가 스며드는 소리, 뿌리가 서로 스치며 전하는 떨림.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침묵의 언어였지만, 누구보다 진실하고 따뜻한 대화였다.

푸른 잎은 황금 이파리의 뿌리를 통해 그 대화의 한 자락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바람이 세다. 괜찮니?”
“내가 조금 더 물을 보낼게. 네가 버틸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있기에, 숲은 쓰러지지 않아.”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무들은 위에서는 서로를 가로막고 다투고 있었지만, 땅속에서는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그는 알았다. 진짜 숲의 목소리는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어느 날, 숲에 긴 가뭄이 찾아왔다.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빗방울은 한참 동안 내리지 않았다. 나무들의 잎은 하나둘 말라가고, 작은 새싹들은 금세 시들어갔다. 숲 전체가 신음하는 듯했다.

그때 푸른 잎은 뿌리로 전해지는 강한 진동을 느꼈다.
굵은 뿌리들이 자신들의 물을 조금씩 덜어내어, 어린 나무와 약한 나무들에게 보내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충분치 않았지만, 그들은 나누었다. 그 보이지 않는 나눔 덕분에 숲은 완전히 죽지 않고, 가뭄을 버틸 수 있었다.

푸른 잎은 감격하며 속삭였다.
“이게 바로 숲의 힘이구나.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가 서로를 지킬 때, 숲 전체가 살아남는 거야.”

황금 이파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대화야말로 숲의 심장이지. 우리는 가지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뿌리로 이어진 하나의 몸이야.”

그 말은 푸른 잎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깨달았다.
사랑이란 단순히 두 나무 사이의 교감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숲 전체를 붙드는 거대한 힘이었다. 뿌리의 대화는 개인의 생명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를 살리고 있었다.

밤이 되자 숲은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푸른 잎은 뿌리의 대화를 더욱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속삭임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뿌리내리고, 함께 살아간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한 힘이다.”

푸른 잎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많은 나무들이 서로의 빛을 가로막으며 경쟁하고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싸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귀는 이미 보이지 않는 대화에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푸른 잎은 알았다.
삶의 진짜 의미는 더 높이 오르는 데 있지 않고, 더 깊이 이어지는 데 있다는 것을.



2부 9장
― 숲이 하나가 되는 순간


가뭄은 오래 이어졌다.
햇살은 나무들의 잎을 태웠고, 땅은 갈라졌다. 숲 전체가 바싹 마른 호흡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예외는 없었다. 모두가 목이 말랐고, 잎은 축 늘어졌다. 숲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듯 침묵에 잠겨 있었다.

푸른 잎 역시 지쳐가고 있었다. 그의 잎사귀는 빛을 받아도 힘을 내지 못했고, 뿌리는 메말라갔다. 그러나 그때, 그는 땅속에서 흐르는 미묘한 떨림을 다시금 느꼈다. 황금 이파리의 뿌리가 자신의 뿌리에 물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물줄기였지만, 그의 몸을 다시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감격하며 속삭였다.
“네가 나를 살리고 있구나.”

그러나 그것은 황금 이파리만의 행동이 아니었다. 숲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자신이 가진 물을 조금씩 나누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굵은 나무는 더 많은 물을 흘려보냈고, 작은 나무는 적은 물을 내어주었지만,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두 함께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푸른 잎은 눈을 감고 그 거대한 흐름을 느꼈다. 숲 전체가 하나의 몸처럼, 뿌리로 이어져 있었다. 물줄기는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또 다른 나무로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숲이 한 몸으로 호흡하며, “살자”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숲은 단순히 많은 나무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존재, 하나의 영혼이었다. 가지는 여전히 제각각 뻗어 있었지만, 뿌리 속에서는 모두가 하나였다.

푸른 잎은 그 체험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삶은 혼자가 아니구나. 우리가 함께 살아야 숲이 살아. 숲이 살아야 나도 산다. 사랑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곧 사랑이야.”

가뭄은 결국 끝나고 비가 내렸다. 굵은 빗방울이 숲을 적시자, 메말랐던 잎들이 다시 푸르러졌다. 그러나 푸른 잎의 가슴속에는 이미 다른 변화가 있었다. 비가 오기 전, 그 절망의 순간에 그는 숲이 하나가 되는 진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황금 이파리가 속삭였다.
“푸른 잎, 우리는 함께였어. 그 순간 숲은 쓰러지지 않았지.”
푸른 잎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나는 이제 알았어. 숲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사랑으로 존재하는 거야. 우리는 결국 하나야.”

그날 이후, 푸른 잎은 더 이상 홀로 높이 오르려 애쓰지 않았다. 그의 가지는 여전히 하늘을 향했지만, 그것은 빛을 차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옆 나무와 바람을 함께 막아내고, 뿌리로 이어진 대화를 통해 숲 전체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숲은 하나였다.
그가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디어 눈앞에 드러났다. 경쟁으로 가득 차 보이던 숲은, 뿌리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의 몸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푸른 잎은 비로소 깊은 평화를 느꼈다.



3부. 10장.
ㅡ침묵 속의 고치


푸른 잎은 숲의 비밀을 알았다.
빛을 독차지하려는 가지들의 싸움 뒤에서, 뿌리들은 서로를 살리고 있었다. 그 사랑의 물줄기를 체험한 그는 더 이상 경쟁의 법칙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갈증이 남아 있었다.

“나는 왜 여전히 허전한가? 숲이 하나라는 걸 알았는데도, 왜 내 안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지?”

푸른 잎은 이 질문과 함께, 자신 안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위로 오르려는 갈망도 아니었고, 뿌리로 뻗으려는 본능도 아니었다.
마치 자신을 온전히 감싸서, 세상과 단절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충동은 현실이 되었다.
푸른 잎의 몸이 천천히 굳어가더니, 스스로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가지는 움츠러들고, 잎은 말려들며, 마침내 그는 두꺼운 껍질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숲의 소리도, 바람도, 햇살도 닿지 않는, 완전한 고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고치 속은 어둡고 고요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익숙했던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었다.
푸른 잎은 속으로 외쳤다.
“나는 왜 이 안에 갇힌 거지? 여긴 너무 어둡고 답답해. 다시 빛을 보고 싶어.”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알았다. 이 고통은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고치 속에서는 자신의 오래된 껍질들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경쟁에 대한 집착, 높이에 대한 욕망, 홀로 서려했던 교만. 그 모든 것이 썩어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듯한 아픔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죽음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태어나고 있었다.

푸른 잎은 속삭였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는 결코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없구나. 이 고치는 나를 죽이려는 감옥이 아니라,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자궁이었어.”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고치 속의 침묵은 끝없는 밤 같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푸른 잎은 자기 자신과 깊이 마주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삶의 진짜 변형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되는 거야. 내가 나를 허물어야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고치 속에서 그는 울고, 고통스러워하며, 동시에 기도하듯 속삭였다.
“숲이여, 나를 새롭게 빚어주어라.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자유롭게 나누는 존재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 푸른 잎은 알았다.
고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죽음을 통해 탄생하는 길, 침묵 속에서 자라는 자유의 날개.

그는 아직 고치 속에 갇혀 있었지만, 이미 마음은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3부 11장
― 허물어지는 나, 태어나는 나


고치 속의 시간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푸른 잎은 더 이상 햇살을 보지 못했고, 바람의 노래도 들을 수 없었다. 숲의 대화는 멀어졌고, 황금 이파리의 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침묵,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이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잎사귀는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가지는 스스로 부서져 내렸다. 익숙했던 자신의 모습이 하나씩 무너져 가는 광경은, 푸른 잎에게 끔찍한 공포였다.

“나는 더 이상 나무가 아닌 걸까? 내가 누구인지조차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 이상한 평화가 함께 찾아왔다.
부서지고 흩어지던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세포들이 자라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형체들이 그의 몸속에서 움트고 있었고, 그것은 나무의 잎사귀도, 줄기도 아닌 낯선 구조물이었다.

푸른 잎은 깨달았다.
“옛 나를 허물지 않고서는, 새로운 나를 맞이할 수 없구나. 내가 붙들고 있던 모든 것은 결국 껍질이었어.”

그는 과거를 떠올렸다.
빛을 독차지하려던 욕망, 더 높이 오르려던 집착, 홀로 강해지고 싶던 교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자신을 가두고 있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 내일의 나로 태어나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이것이 내 길이야.”

고치 속에서의 시간은 마치 끝없는 죽음의 연속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산실이었다. 고통은 더 이상 원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형의 증거,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고 있다는 징표였다.

푸른 잎은 속삭였다.
“사랑을 배운 나무는 이제 날개를 배워야 한다. 뿌리로 이어진 숲을 경험한 나는, 이제 하늘로 이어지는 자유를 경험해야 한다.”

그의 몸속에서 서서히 날개의 흔적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가지도 아니었고, 잎도 아니었다. 전혀 새로운 구조, 전혀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그는 아직 완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직감으로 느꼈다.
“나는 나무로 시작했지만, 나비로 끝나리라. 숲을 붙들던 뿌리의 힘 위에서, 나는 이제 하늘을 나는 존재가 될 거야.”

고치 속의 어둠은 여전히 깊었지만, 푸른 잎의 마음속에는 빛이 자라고 있었다.
그 빛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내면, 허물어진 껍질의 심장에서 솟아나는 빛이었다.

푸른 잎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는 알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시작임을.
허물어지는 나는 곧 태어나는 나였다.




3부 12장
― 날개의 탄생


고치 속의 어둠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푸른 잎은 몸 안에서 이상한 떨림을 느꼈다. 그것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희망이었다. 오래전 가지와 잎으로 살던 자신의 흔적은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해 낯설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날개였다.

처음 날개는 연약하고 투명했다. 마치 햇살을 머금은 얇은 막처럼, 부서질 듯 가벼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날개에는 무늬가 새겨지고, 빛깔이 스며들었다. 고치 속의 어둠이 도리어 그 날개에 빛을 더해주고 있었다.

푸른 잎은 그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더 이상 나무의 잎이 아니다. 나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고 있다. 뿌리의 사랑을 경험한 내가, 이제 하늘의 자유를 누릴 준비를 하는구나.”

그러나 날개의 탄생은 단순한 기쁨만은 아니었다. 날개가 자라나는 동안 그는 깊은 고통을 겪었다.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 익숙한 형체가 무너지고 새로운 형체가 솟아나는 괴로움. 그러나 그는 알았다. 고통은 변형의 값이며, 자유의 대가라는 것을.

시간이 흐르자 고치의 벽이 얇아지기 시작했다.
푸른 잎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며, 단단한 껍질을 찢어냈다. 작은 틈이 생겼고, 빛이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본 햇살은 눈부셨다. 그는 다시 힘을 내어 껍질을 찢고, 마침내 고치에서 빠져나왔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날개를 스쳤다.
그는 떨리는 날개를 천천히 펼쳤다. 처음에는 무겁고 서툴렀다. 하지만 곧 그는 알았다. 이 날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늘로 오르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푸른 잎은 땅을 떠올랐다.
뿌리의 대화, 황금 이파리와의 만남, 숲이 하나가 되는 순간. 그 모든 경험이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모든 사랑과 고통을 등에 짊어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비상은 서툴렀다.
날개는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았고, 바람은 거칠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떨어지고, 다시 날개를 퍼덕였다. 마침내 그는 땅을 완전히 벗어나 공중에 올랐다.

푸른 잎은 울부짖듯 속삭였다.
“나는 더 이상 나무의 잎이 아니다. 나는 숲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하늘을 나는 존재다. 나는 이제 자유다!”

그의 날갯짓은 숲 위로 퍼져나갔다. 아래에서 다른 나무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지의 경쟁 속에 갇혀 있던 그들은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푸른 잎을 보며 숨을 고르고, 새로운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도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푸른 잎의 날개는 단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숲 전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삶의 길은 단순히 더 높이 오르는 데 있지 않았다. 더 깊이 사랑하고, 더 깊이 변형되어, 마침내 하늘을 나는 자유를 얻는 데 있었다.

날개는 그 자유의 증표였다.
고치 속에서 허물어지고 태어난 나,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딘 나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이었다.

푸른 잎은 하늘 위를 날며 속삭였다.
“나는 뿌리에서 사랑을 배웠고, 고치에서 변형을 배웠다. 이제 날개로 자유를 배우리라. 이것이 나의 길, 숲의 길, 모든 생명의 길이다.”




3부 13장
― 하늘에서 본 숲


푸른 잎은 떨리는 날개를 퍼덕이며 숲 위로 올랐다.
그는 처음으로 땅에서 벗어나 하늘에서 숲을 내려다보았다. 오랫동안 뿌리와 가지 사이에서만 살아왔던 그는, 이제 전혀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 것이다.

숲은 위에서 보니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그는 눈앞의 나무들만 보았고, 서로 빛을 가로막고 다투는 가지들만 기억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숲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많은 나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초록 바다를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로 강이 흐르며 햇살이 반짝였다.

푸른 잎은 속으로 외쳤다.
“숲은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내가 땅에서만 볼 때는 알 수 없었던 모습이었어. 우리는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었어.”

그는 바람을 타고 숲 위를 돌며 날았다.
가지를 서로 부딪히던 나무들도, 빛을 두고 다투던 잎들도, 위에서 보면 모두 거대한 하나의 숲의 일부였다. 각자의 다툼은 가까이서 보면 치열했지만, 멀리서 보면 숲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흐름 안에 녹아 있었다.

푸른 잎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너무 작은 것만 보았구나. 나의 욕망, 나의 경쟁, 나의 두려움… 그러나 숲은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더 큰 생명을 이루고 있었어.”

그 순간, 그는 황금 이파리를 떠올렸다.
뿌리에서 이어져 자신을 붙들어 주었던 존재, 함께 물을 나누던 따뜻한 영혼. 그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황금 이파리가 속한 나무를 찾았다. 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가지 위에서, 황금 이파리는 여전히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

푸른 잎은 날갯짓을 멈추고, 그 위로 조용히 내려왔다.
그는 속삭였다.
“황금 이파리여, 나는 이제 알았어. 우리가 함께 뿌리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 그 사랑이 숲을 지탱한다는 것. 그리고 이제 나는 하늘에서 숲 전체를 보았어. 우리는 단순한 나무들이 아니라, 하나의 큰 숲, 하나의 생명이었어.”

황금 이파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푸른 잎. 네가 날개를 얻고 하늘을 본 건, 너만을 위한 일이 아니야. 네 눈을 통해 숲이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될 거야. 너의 날갯짓은 곧 숲 전체의 희망이야.”

그 말은 푸른 잎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이제 날개의 의미를 알았다. 그것은 단순히 자유롭게 나는 기쁨만이 아니었다. 숲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그 진실을 다시 전하는 사명이었다.

푸른 잎은 하늘을 돌며 속삭였다.
“나는 이제 숲의 일부일 뿐 아니라, 숲을 바라보는 눈이 되리라. 내가 본 이 광활한 아름다움, 우리가 하나라는 진실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리라.”

그날 저녁, 붉은 노을이 숲 위에 드리워졌다.
푸른 잎은 하늘에서 숲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어제의 나무가 아니었다. 뿌리에서 사랑을 배우고, 고치에서 고통을 견디고, 날개로 자유를 얻은 그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이제 숲 전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3부 14장
― 자유는 나눔으로 완성된다


푸른 잎은 날개를 얻어 하늘을 나는 기쁨을 누렸다.
그는 숲 위를 돌며 바람과 춤추었고,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자유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함이었다. 그러나 날갯짓이 익숙해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물음이 자라났다.

“이 자유는 나만을 위한 것일까? 나는 왜 하늘을 얻었는가?”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숲은 여전히 경쟁과 고통 속에 있었다. 많은 나무들이 빛을 차지하려 애쓰고 있었고, 어린 새싹들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푸른 잎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때, 바람이 그를 이끌어 꽃들이 핀 들판으로 데려갔다.
꽃들은 가만히 땅에 뿌리내린 채, 자신들의 자리에서 피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갈망이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의 꽃가루를 옮겨줄 이, 생명을 이어 줄 이가 필요했다.

푸른 잎은 순간 깨달았다.
“아, 이것이구나. 내 날개의 의미는 단순한 비상이 아니었어. 나는 이 날개로 꽃들을 살리고, 숲을 이어가는 일을 해야 해.”

그는 꽃 위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날개에 묻히고, 다른 꽃으로 옮겼다. 작은 날갯짓 하나가 새로운 씨앗을 잉태하게 했다. 푸른 잎은 눈을 감고 속삭였다.
“자유는 나만의 것이 아니야. 자유는 타인의 생명을 살릴 때 완성되는구나.”

그날 이후, 푸른 잎은 숲 위와 들판을 오가며 날았다. 그는 더 이상 혼자의 기쁨만을 위해 날개를 퍼덕이지 않았다. 그의 날갯짓은 꽃과 숲,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

다시 숲 위를 돌던 어느 날, 푸른 잎은 황금 이파리를 찾았다. 그는 나무 위에서 여전히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푸른 잎은 황금 이파리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말했다.
“나는 이제 알았어. 자유는 혼자 높이 나는 데 있지 않아. 자유는 누군가를 살리고, 함께 나누는 데 있어. 나의 날개는 결국 숲과 꽃들을 위한 것이었어.”

황금 이파리는 따뜻하게 대답했다.
“그래, 푸른 잎. 너는 진짜 자유를 찾았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자유, 나눔으로 완성된 자유. 그것이 바로 숲이 오래도록 살아남는 길이지.”

그 말에 푸른 잎은 눈을 감았다.
뿌리의 대화에서 사랑을 배웠고, 고치에서 변형을 견뎠으며, 날개로 자유를 얻은 그는 이제 나눔 속에서 그 자유를 완성하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넓었고,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의 날갯짓 하나하나가 숲을 살리고, 꽃들을 피우며,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른 잎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삶은 더 높이 나는 데 있지 않다.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넓게 나누는 데 있다. 이것이 진짜 자유다.”




4부 15장
― 등불이 켜지다


푸른 잎은 더 이상 나무의 잎도, 단순한 나비도 아니었다.
그는 숲의 비밀을 알고, 고치의 고통을 견디며, 날개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은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머물 수 없었다. 숲은 여전히 경쟁 속에 있었고, 많은 나무와 잎들은 여전히 허무의 기둥을 오르듯 끝없는 다툼에 빠져 있었다.

푸른 잎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
“내가 본 것을, 내가 배운 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숲이 스스로 빛을 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때 그의 마음속에 작은 불빛이 켜졌다. 그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뿌리의 사랑, 고치의 고통, 날개의 자유 속에서 스스로 타오른 내적 등불이었다.

그 등불은 말없이 그를 비추었다.
“네가 살아낸 길 자체가 등불이다. 너는 다른 이들을 설득할 필요도, 강요할 필요도 없다. 네가 살아낸 변형과 나눔이 곧 숲을 비추는 빛이 된다.”

푸른 잎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하늘을 날며 숲 위를 돌았다. 나무들은 여전히 서로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숲 전체를 은은히 감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몇몇 나무들이 속삭였다.
“저건 뭐지? 저 빛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빛은 강렬하지 않았다. 오히려 촛불처럼 작고 고요했다. 그러나 바로 그 소박한 빛이, 숲을 향한 새로운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푸른 잎은 속삭였다.
“사랑은 등불이다. 고통도 등불이다. 자유도 등불이다. 이 불빛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숲 전체의 길을 밝히는 희망이다.”

그의 날갯짓은 등불이 되어, 길을 잃은 나무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 주었다. 가지의 다툼에만 몰두하던 이들이 잠시 멈추어 땅속을 떠올렸고, 고치를 두려워하던 이들이 잠시 고요의 가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숲은 조금씩 달라졌다. 거대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작은 떨림이 이어졌다. 등불은 번져갔고, 하나의 불빛이 두 개, 세 개로 확산되었다.

푸른 잎은 알았다.
“희망은 거대한 불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작은 등불 하나가 숲을 바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더욱 확신했다.
삶의 여정은 단순히 뿌리와 가지, 고치와 날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등불이 되어, 희망을 전하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4부 16장
― 희망은 날개를 타고


푸른 잎의 날개 끝에서 흘러나온 빛은 처음엔 작았다.
숲의 수많은 잎과 가지에 가려져 쉽게 사라질 듯 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빛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을 타고, 다른 나무의 이파리에 닿고, 다시 다른 가지로 번져갔다.

어느 나무는 그 빛을 잠시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저건 무엇이지? 왜 내 마음이 이렇게 따뜻해지는 걸까?”
다른 나무는 그 빛을 받아들인 뒤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늘 더 많은 햇살을 차지하려 애썼지만, 어쩌면 삶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지도 몰라.”

빛은 눈부시게 강렬하지 않았기에,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온화함이 나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작은 떨림이 이어지고, 오래된 집착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숲은 여전히 다투고 있었지만, 그 싸움 사이사이에서 새로운 질문이 움트기 시작했다.

푸른 잎은 하늘을 돌며 그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내 날개가 단지 나를 위한 자유였다면, 이 빛은 숲 전체를 위한 희망이구나. 희망은 날개를 타고 번져가며, 서로의 마음을 깨우는구나.”

그 순간, 그는 꽃들이 피어 있는 들판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또 다른 장면을 보았다. 작은 나비들이 하나둘 피어나, 자신처럼 꽃 위를 오가며 꽃가루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날갯짓에서도 작은 빛이 흘러나와 꽃과 숲을 비추고 있었다.

푸른 잎은 미소 지으며 깨달았다.
“내 등불은 혼자가 아니었구나. 나비가 된 존재들마다,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었어.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이지만, 하나의 빛으로 숲을 밝히고 있구나.”

숲 위로 수많은 빛이 흩날렸다.
그 빛들은 별처럼 반짝이며 서로 연결되었다. 나무들은 점점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작은 새싹들은 다시 희망을 품고 자라기 시작했다.

그날 밤, 달빛이 숲을 덮었을 때, 푸른 잎은 숲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등불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가지와 뿌리, 잎과 꽃, 나비와 새. 모든 존재가 서로의 빛을 이어받아 하나의 거대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푸른 잎은 속삭였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었고, 서로를 비출 때 날개를 타고 퍼져나가는 거야.”

그의 날갯짓은 더 이상 홀로의 자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숲과 꽃, 그리고 미래의 생명을 위한 희망의 노래였다.





4부 17장
― 숲의 노래, 인간의 노래


숲은 빛나고 있었다.
푸른 잎의 날개에서 시작된 작은 등불은 다른 나비들에게 이어졌고, 다시 나무와 꽃, 땅과 바람으로 번져갔다. 이제 숲은 단순한 나무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하나의 심장처럼 박동하는 영혼이었다.

밤이 깊어 달빛이 내려앉자, 숲 전체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잎의 떨림이었고, 뿌리의 숨결이었으며, 날개의 속삭임이었다. 모든 생명이 하나가 되어 부르는 합창이었다.

푸른 잎은 하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는 말이 없었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사랑이 우리를 묶고, 고통이 우리를 빚으며, 자유와 나눔이 우리를 완성한다.”

그 순간, 숲의 노래는 경계를 넘어 퍼져나갔다.
멀리 떨어진 들판의 꽃들도 고개를 들었고, 산새들도 날개를 접고 귀를 기울였다. 심지어 숲 근처를 지나던 인간의 마음에도 그 울림이 스며들었다.

어느 소년이 숲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도시의 소음과 경쟁 속에서 지쳐, 우연히 숲을 찾은 아이였다. 그는 숲의 노래를 들으며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어디서 오는 소리지? 왜 내 마음이 이렇게 따뜻해지는 거지?”

소년은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숲의 노래는 그의 가슴을 파고들어,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삶은 더 높이 오르는 데 있지 않다. 더 깊이 변하고, 더 넓게 사랑하며, 더 자유롭게 나누는 데 있다.”

소년은 눈물이 고였다.
학교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그는 늘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 끝에서 느낀 것은 공허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숲의 노래는 전혀 다른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푸른 잎은 하늘에서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이제 숲의 노래는 인간의 노래가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단지 나무와 나비의 이야기가 아니야. 인간의 길도 숲의 길과 다르지 않아. 너희도 고치를 지어야 하고, 너희도 날개를 얻어야 해. 그리고 너희의 자유도, 나눔 속에서 완성될 거야.”

소년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숲의 향기, 바람의 촉감, 그 모든 것이 그의 가슴속에 새로운 등불을 켜주었다. 그는 느꼈다.
“그래, 나도 달라질 수 있어. 나도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치를 짓고, 새로운 날개를 얻을 수 있어.”

그날 밤, 숲은 인간에게까지 노래를 건넸다.
숲의 노래는 이제 단순한 자연의 합창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는 희망의 언어였다.




4부 18장
― 등불은 우리 안에 있다


숲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잎에서 잎으로, 뿌리에서 뿌리로, 날개에서 꽃으로 이어지며 숲 전체에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래는 인간의 마음에까지 닿았다.

푸른 잎은 하늘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알았다. 자신의 날갯짓은 단지 한 존재의 변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숲 전체의 변화를 일으키고, 인간에게까지 희망의 불씨를 나누는 길이었다.

그러나 푸른 잎은 더 깊이 깨달았다.
희망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빛은 태양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각자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등불은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숲이 푸른 잎에게 가르쳐 준 진실이었다.
뿌리의 사랑이 그것을 밝혔고, 고치의 고통이 그것을 단단하게 했으며, 날개의 자유와 나눔이 그것을 드러냈다. 결국 등불은 결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 안에서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빛이었다.

푸른 잎은 속삭였다.
“너희는 더 높이만 오르려 하지 말라. 그곳엔 허무가 있을 뿐이다. 대신 너희 안의 고치를 짓고, 두려움을 견디며, 내면의 등불을 찾으라. 그 빛이야말로 너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끌 것이다.”

숲은 그의 말을 들으며 더욱 깊은 빛을 머금었다.
나무들은 다툼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 한순간씩 멈추어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떤 나무는 서서히 가지를 거두었고, 어떤 잎은 빛을 독차지하기보다 옆의 잎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숲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숲의 노래를 들은 소년은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 울림을 잊지 않았다. 그는 경쟁에만 몰두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 안을 돌아보았다. 언젠가 그는 고치를 짓고, 자기 안의 등불을 밝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빛을 전하게 될 것이다.

푸른 잎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날갯짓은 끝났을지 몰라도, 그의 등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왜냐하면 희망은 한 존재의 것이 아니라, 이어지고 번져가는 불빛이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 별들이 떠올랐다.
푸른 잎은 별빛과 숲의 빛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마치 하늘과 땅이 같은 언어를 노래하는 듯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삶은 더 높이 오르는 데 있지 않다.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용기 있게 변형하며, 더 넓게 나누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의 끝에는 등불이 있다. 그 등불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그 순간, 숲은 고요히 빛났고, 인간의 마음도 은은히 빛났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희망은 언제나,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





■ □에필로그



청람 김왕식 철학 우화집

『등불을 향한 나무들』





문학평론가 김준현





Ⅰ. 서론 ― 숲의 이야기와 인간의 실존

『등불을 향한 나무들』은 단순한 우화집이 아니다. 저자는 숲 속 나무들의 생장과 교감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비추는 철학적 거울을 제시한다. 책은 네 부분으로 짜여 있는데, 첫째는 가지들의 경쟁, 둘째는 뿌리들의 공존, 셋째는 푸른 잎의 고치와 변형, 넷째는 나비의 날개와 등불의 노래다. 이러한 구조는 곧 인간이 겪는 삶의 단계 ― 욕망과 경쟁, 공존과 사랑, 고통과 변형, 자유와 희망 ― 을 은유한다.

에필로그는 이 네 단계가 합쳐져 드러내는 궁극적 의미를 해석하고, 그 철학적 함의를 독자에게 전하는 장이다. 다시 말해, 숲의 이야기가 단순히 자연 생태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지침’ 임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Ⅱ. 가지의 세계 ― 경쟁과 공허의 은유

첫 번째 부분에서 등장하는 가지들은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며 서로의 햇빛을 빼앗으려 한다. 이는 곧 인간 사회에서의 경쟁과 욕망을 상징한다. 가지들의 언어는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라는 구호로 요약된다.

철학적으로 이는 근대 사회가 강조해 온 성취와 성장의 패러다임과 연결된다. 니체가 지적했듯 인간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문명 전반에 경쟁적 구조를 낳는다. 그러나 책 속 가지들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아무리 높이 뻗어도 끝내는 고독 속에서 마른 가지로 변한다. 이는 존재론적 공허를 드러낸다.

즉, 경쟁을 통한 성취가 인간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저자는 숲의 이야기를 통해 ‘아니요’라고 답한다. 높이만을 추구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고립과 허무를 낳는다.




Ⅲ. 뿌리의 세계 ― 공존과 사랑의 철학

두 번째 부분은 이러한 허무에 대한 해답으로 뿌리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뿌리들은 서로의 물줄기를 나누며 보이지 않는 대화를 이어간다. 나무가 홀로 설 수 없는 것처럼, 인간 또한 관계와 공존 속에서만 의미를 발견한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애착이 아니라, 실존적 연대다.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너(Ich-Du)’의 관계와도 상통한다. 인간은 타자를 단순히 ‘그것’으로 대상화할 때 고립되지만, 타자를 ‘너’로 만날 때 진정한 삶의 깊이를 경험한다. 뿌리들의 교감은 바로 이 만남의 은유다.

결국 숲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의 본질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 있으며, 그 깊이는 사랑과 공존을 통해만 드러난다.




Ⅳ. 고치의 은유 ― 고통과 변형의 길

세 번째 부분에서 푸른 잎은 자기 자신을 가두고 고치가 된다. 이는 삶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고통, 상실, 실패, 좌절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고통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의 변형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철학적으로 이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실존적 도약’과 유사하다. 인간은 절망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또한 하이데거가 언급한 ‘죽음에의 존재’와도 통한다. 죽음을 인식할 때,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변형된다.

푸른 잎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형체로 태어나는 과정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너는 고통을 피하려 하는가, 아니면 변형의 길을 받아들이는가?” 진정한 자유와 성숙은 변형을 거부하는 삶에서는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Ⅴ. 날개와 자유 ― 개인적 해방을 넘어선 공동체적 자유

나비로 변한 푸른 잎은 드디어 하늘을 난다. 이는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자유는 단순히 개인적 해방이 아니다. 나비의 날갯짓은 꽃을 수정시키고 숲 전체의 생명을 이어준다. 자유는 타자와 세계를 위한 나눔 속에서만 완성된다.

오늘날 자유는 흔히 개인적 욕망의 실현으로만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자유를 ‘타자와 함께하는 존재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이는 레비나스의 철학과도 공명한다. 타자에 대한 책임이 곧 인간의 본질이라는 그의 사상은 나비의 삶에서 구현된다.




Ⅵ. 등불의 상징 ― 내적 빛과 희망의 발견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는 ‘등불’은 숲 전체를 밝히는 희망의 은유다. 흥미로운 점은 이 등불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푸른 잎의 날개 끝에서 흘러나온 빛이라는 사실이다. 즉, 희망은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내적 빛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연상시킨다. 인간은 외부의 빛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빛을 향해 회귀할 때 진리를 본다. 또한 불교의 ‘자등명(自燈明)’, 곧 “스스로를 등불 삼으라”는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희망은 초월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신비가 아니라, 존재 안에 이미 깃든 빛을 발견하고 나누는 과정이다. 그것이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다.




Ⅶ. 결론 ― 등불을 전하는 인간의 길

『등불을 향한 나무들』은 가지에서 뿌리로, 고치에서 날개로, 나비에서 등불로 이어지는 우화적 노정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가지의 세계는 경쟁과 성취의 허무를 일깨운다.

뿌리의 세계는 공존과 사랑의 깊이를 보여준다.

고치는 고통이 변형의 통로임을 가르친다.

날개는 자유가 나눔 속에서 완성됨을 상징한다.

등불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내적 빛, 곧 희망의 발견을 알린다.


이제 독자는 책을 덮으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더 높이 오르는 가지인가, 아니면 더 깊이 내리는 뿌리인가?”
“나는 자유를 혼자 누리려 하는가, 아니면 함께 나누려 하는가?”
“나는 고통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변형의 길을 받아들이는가?”

저자는 숲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명확히 답한다.
삶은 높이에 있지 않고, 깊이에 있다.
자유는 혼자 차지할 때가 아니라, 함께 나눌 때 완성된다.
그리고 그 모든 길의 끝에는 희망의 등불이 있다.

그 등불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그 빛을 발견하고 전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살아야 할 가장 근본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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