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박철언 시인
■ 에필로그
청민 박철언 시인의 삶의 무게와 시의 향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들어가는 말
청민 박철언 시인의 제7시집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단순한 시집 출간을 넘어, 한 인간의 치열한 체험과 고백이 응축된 기록이자 한 시대의 정신 연대기를 담아낸 문학적 결산이다. 그의 시를 펼치는 순간 우리는 서정의 차원을 넘어, 고난과 성찰, 절망과 회복이 교차하는 내면의 여정을 마주하게 된다. 시 한 편 한 편은 개인의 토로를 넘어 삶 전체의 응축으로 다가오며, 문학이 곧 생존의 방식임을 확인시킨다.
박철언 시인의 문학적 뿌리는 학창 시절 ‘청맥’ 동아리에서 시작되었고, 대학 시절 괴테·릴케·헤세의 언어와 사유 속에서 깊어졌다. 그러나 그의 길은 문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검사와 장관, 정치인의 삶은 그를 권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았고, 영광과 고독이 교차하는 공직자의 길은 마침내 정치적 추락과 482일간의 옥중 체험으로 이어졌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그는 언어를 붙잡음으로써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체험은 이후 그의 문학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첫 시집 『작은 등불 하나』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 생존의 불씨였고, 이어진 여러 시집은 그의 삶의 궤적을 증언하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제7시집은 고난을 견디며 다시 살아낸 언어의 집약이다. 이번 시집의 의의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왜 사느냐”라는 근원적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한다는 점이다. 그는 삶의 이유를 거창한 성취가 아닌, “듣고, 걷고, 봉사하며, 글을 쓰고, 사랑할 수 있음” 속에서 찾으며, 결국 “살아야 할 이유는 이미 넘치고 있다”라고 선언한다. 둘째, 문학을 통한 자기 구원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는 언어를 붙잡아 스스로를 살렸고, 그 고백은 독자에게 위로와 연대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개인의 고백을 넘어 우리 모두의 질문이자 응답이며,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려는 숭고한 의지의 기록이다.
본론
1.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
― 제1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제7시집의 첫 장은 곧 시인의 문학적·정신적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대표작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단순한 질문을 바탕으로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실존적 고백과 성찰의 언어로 승화시킨다. “보고 들을 수 있으니까”, “걸을 수 있으니까”라는 응답은 겉으로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기능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인의 언어 속에서는 그것들이 외려 삶을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 이유로 전환된다. 삶은 거창한 업적이나 사회적 성취에 의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 자체가 이미 존엄하다는 자각이 이 시의 핵심이다. 특히 “아직 못다 한 사랑이 있으니까”라는 구절은 단순한 정서적 고백을 넘어, 타인을 향한 자기 비움과 헌신의 윤리로 확장된다. 불교의 공(空) 사상과 기독교적 사랑이 교차하며, 삶의 허무를 극복하는 근원적 힘으로 자리한다. 제1부에 실린 다른 시편들, 「첫 태양의 심장소리」,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노래」 등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삶의 단순한 행위와 존재의 소박한 순간 속에 충만한 의미가 있음을 일깨운다. 따라서 제1부는 단지 시집의 시작이 아니라, 전체 작품의 정신적 주춧돌이자 시인이 평생 걸어온 삶의 응축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2.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응시
― 제2부 새벽과 아침 사이, 제3부 인생은 강물 같은 것인가
제2부와 제3부는 개인적 서정을 넘어 역사와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증언한다. 「혼돈의 나라, 지쳐가는 국민들」은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피폐해진 민중의 현실을 직시한다. “시간아 천천히”라는 호소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빠르게 소진되는 생명을 붙잡고자 하는 절규다. 시인에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흐름이지만,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는 잔인한 속도로 흘러간다. 「성수대교 가로등」, 「얼어버린 한강」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시대의 상처와 집단적 비극을 드러내는 기호로 기능한다. 무너진 다리, 얼어붙은 강은 곧 우리 사회가 겪은 분단과 상실, 근대화의 그늘을 상징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상흔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역사의 어둠을 증언하면서 동시에 내일을 향한 기도를 놓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체념이 아니라 희망을 전제한 기록이다. 제2부 「새벽과 아침 사이」라는 제목 자체가 어둠과 빛 사이의 경계, 고통과 희망의 이행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두 장은 시인의 개인적 체험을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공동체 전체의 증언록이자 민족적 회고록으로 읽힌다. 시인이 노래하는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상처와 치유가 맞부딪히는 역사적 무대다.
3. 자연과 존재의 합일
― 제4부 해변의 나그네 삶은 어디쯤, 제5부 달을 향한 연가
시집의 중반부는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성찰한다. 청민 시인에게 바다, 달, 별, 노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바다와 벤치」에서 “외로워서 걷는다 / 내게 마지막 노을이 오면”이라는 고백은 죽음을 예감하는 듯한 허무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고독을 존엄으로 긍정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바다는 무한을 상징하며, 그 앞에 선 인간은 유한성을 자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유한성을 두려움으로 보지 않고 외려 평온히 받아들인다. 또한 「빛과 어둠의 공존 속에 피어나는 시」에서 “그 사람은 부재중”이라는 간결한 진술은 상실의 아픔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재 자체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달과 별은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하늘 속에서 상실과 희망을 동시에 품은 상징이다. 자연은 이처럼 모순된 진실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허무와 충만을 함께 비춘다. 따라서 제4부와 제5부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간과 우주가 이어지는 합일의 장으로 재해석한다. 시인은 자연 속에서 고독을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며, 존재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4. 인간관계와 존재의 허무
― 제6부 사랑은 눈처럼 왔다가
제6부는 인간관계와 허무의 문제를 다룬다. 눈은 사라짐과 소멸의 은유지만, 동시에 사랑과 기억의 표상이 된다. 「흰 눈 위에 쓰는 시, 사라진다 해도」는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인간의 삶 역시 순간처럼 사라져 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허무 속에서도 빛나는 흔적을 발견한다. 「어머니 목소리」, 「눈 내리는 날의 독백」 같은 작품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 사랑과 기억을 드러낸다. 눈은 녹아 없어지지만,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와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또한 「안부 편지」는 소박한 인간관계의 진실을 보여준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소한 행위 속에 깃든 정성과 그리움은, 눈발처럼 사라져 가는 존재 속에서도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다. 청민 시인은 허무와 연대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외려 허무의 인식을 통해 연대와 사랑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말한다. 결국 제6부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응시하면서도, 그 허무 속에서 사랑과 관계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허무에서 이끌어낸 사랑의 힘, 그것이 곧 그의 시가 제시하는 근원적 답변이다.
5. 노년과 성찰의 깊이
― 제7부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
제7부는 노년의 성찰을 주제로 한다.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팔순의 나이는 쇠퇴가 아니라 삶을 다시 해석하는 축제의 장이다. 시인은 전쟁, 공직, 옥중 생활을 지나 팔순에 이르러, 그 세월을 단순한 고통의 흔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잔치’로 재명명한다. “언제까지 행복한 날일 수 있으려나”라는 물음 속에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으나, 동시에 그것을 감사와 다짐으로 전환하려는 태도가 자리한다. 「가을의 기도」는 삶을 맑고 단정하게 살아가려는 기도를 담고 있으며, “가장 좋은 보조식품은 고향의 바람”이라는 표현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철학적인 깊이를 드러낸다. 노년의 삶은 더 이상 집착과 번뇌의 연장이 아니라, 고향과 문학으로 돌아가는 영혼의 귀환이다. 고향은 기억의 자궁이자 존재의 근원이며, 문학은 영혼의 쉼터다. 따라서 제7부는 인생의 종결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장이다. 삶의 무게는 이제 노래로 승화되고, 노년의 지혜는 성찰을 넘어 유머와 따뜻한 감사로 완성된다.
6. 민족과 시대정신
― 제8부 큰 스승, 겨울산
시집의 마지막 장은 개인의 삶을 넘어 민족적·인류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민족시인 한용운의 빛과 향기」, 「저항시인 이상화」는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서 절개의 가치를 새롭게 불러내는 작업이다. “엄혹한 시대, 대나무 숲 직립의 절개”라는 구절은 일제강점기의 선각자들을 기리는 동시에, 오늘의 도덕적 좌표를 환기한다. 또한 「겨울산에 밤이 내리면」은 침묵 속에 깃든 성찰을 보여주며, 공동체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다. 여기서 겨울산은 고난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영혼의 스승으로 자리한다. 개인의 서정은 이 부에서 공동체의 기억과 민족적 정신으로 확장된다.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며 남은 민족적 상흔은 그의 시 속에서 다시 언어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그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다. 한용운과 이상화를 불러내는 일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오늘의 문학 속에 되살려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따라서 제8부는 시집 전체의 결말을 장엄한 울림으로 완성하며, 한 인간의 고백을 공동체와 인류 보편의 증언으로 승화시킨다.
맺음말
청민 박철언 시인의 제7시집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단순한 창작집을 넘어, 한 인간이 겪은 고통과 성찰, 그리고 시대의 상흔을 응축한 문학적 결산이다. 여덟 개의 장으로 펼쳐지는 이 시집은 개인의 고백을 넘어서 공동체의 증언으로 확장되며, 허무와 절망을 직시하면서도 끝내 사랑과 긍정의 언어로 나아간다.
시인의 삶은 곧 시대의 거울이었다. 전쟁의 상흔, 검사와 장관의 길에서 마주한 권력의 무게, 그리고 482일간의 옥중 생활은 그를 절망의 밑바닥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그는 언어를 붙잡았고, 시는 곧 자기 구원의 끈이 되었다. 그의 문학은 체험의 기록이자 생존의 증거였다.
이 시집의 핵심은 삶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정직한 응답이다. 그는 삶의 의미를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듣고, 걷고, 글을 쓰며,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일상의 이유에서 찾았다. 무엇보다 “아직 못다 한 사랑이 있으니까”라는 고백은 존재를 지탱하는 궁극적 힘을 보여준다. 불교적 공(空) 사상과 기독교적 헌신이 교차하며, 시인의 성찰은 영적 깊이로 확장된다.
또한 그는 역사와 사회의 무게를 껴안는다. 「혼돈의 나라, 지쳐가는 국민들」은 민중의 피로를, 「성수대교 가로등」과 「얼어버린 한강」은 시대의 상처를 증언한다. 자연 또한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존재의 거울로 기능하며, 바다와 달, 별과 노을 속에서 허무와 희망의 양가성을 보여준다. 제6부에서는 눈의 이미지를 통해 허무를 응시하면서도 사랑과 기억의 지속성을 드러낸다.
노년의 성찰은 또 하나의 정점이다. 「팔순 잔치는 계속된다」에서 그는 세월을 쇠퇴가 아닌 축제로 승화시키며, “가장 좋은 보조식품은 고향의 바람”이라는 유머 속에서 철학적 위트와 여유를 드러낸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용운, 이상화 등 선배 시인을 소환해 민족적 연대와 시대정신을 오늘에 되살린다.
궁극적으로 이 시집은 우리에게 단순한 진리를 전한다. 삶은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할 이유는 이미 넘쳐나며, 그것은 사랑하고, 기억하며, 연대하는 일 속에 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한 개인의 문학적 결산을 넘어 시대와 인류 보편의 질문에 응답하는 숭고한 대답이며, 한국 문학사 속에 길이 남을 구원의 시학이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철언 시인 제7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