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철거 ㅡ 변희자 시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변희자 시인





건물 철거




시인 변희자




굴삭기가 팔을 휘두르자
뿌연 먼지가 눈물처럼 흩날린다
쌓인 세월의 울음이 터져 나온다

허물어진 벽 틈에서
낡은 속살이 드러나고
찢긴 살처럼 흩어져 뒹군다

돌아서가는 길
후회도, 회한도
남김없이 재로 흩어지니

삶과 죽음을
누구라 다르다 하랴






변희자 시인의 시 '건물 철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의 시 '건물 철거'는 한 편의 짧은 서정시 속에 인간의 삶과 역사, 그리고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압축해 담아낸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는 건축물의 물리적 해체를 다루고 있지만, 그 표면을 지나면 곧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회한과 해방의 상징적 장면으로 확장된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독자는 단순한 철거 현장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의 폐허와도 같은 내면의 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굴삭기가 팔을 휘두르자 / 뿌연 먼지가 눈물처럼 흩날린다”라는 도입부는 기계적 움직임과 인간적 감정의 교차를 보여준다. 무정한 철거기의 팔짓은 도시의 풍경을 무너뜨리지만, 시인은 그 파편을 ‘눈물’로 변환한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먼지가 아니라, 시간 속에 쌓여 있던 추억과 역사가 흩날리며 흘리는 눈물이다.
삶의 한 장면이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지니고 있던 무게를 깨닫는다. 변희자는 이 짧은 순간을 통해 ‘사라짐은 곧 울음의 형태로 남는다’는 존재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허물어진 벽 틈에서 / 낡은 속살이 드러나고 / 찢긴 살처럼 흩어져 뒹군다.” 여기서 벽은 건물의 구조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내적 층위를 상징한다. 세월의 껍질이 벗겨지자 드러나는 것은 단단한 골조가 아니라 부서지기 쉬운 속살이다.
이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 혹은 공동체의 내면적 진실을 은유한다. 더 나아가 ‘찢긴 살’이라는 강렬한 표현은 건물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하며, 파괴의 행위가 곧 폭력적 해부의 장면임을 보여준다.
변희자 시인의 미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그는 무생물을 생명화하고, 파괴를 곧 상처로 전환하여 존재의 연약성과 존귀성을 동시에 일깨운다.

시의 후반부 “돌아서가는 길 / 후회도, 회한도 / 남김없이 재로 흩어지니”라는 구절은 파괴 이후의 정서를 담아낸다. 철거된 건물은 더 이상 눈물과 울음을 간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재가 되어 흩날리며, 후회와 미련조차 그 속에서 사라진다.
이는 죽음의 평등성과 닮아 있다. 삶의 한 장이 끝나면 남은 것은 허무와 고요뿐이며, 미련은 결국 자연의 순환 속에 흩어진다. 시인은 이를 “삶과 죽음을 / 누구라 다르다 하랴”라는 구절로 집약한다. 건물의 철거는 인간 존재의 최종적 소멸을 은유하며, 그 앞에서는 권세도 추억도 차이가 없음을 역설한다.

변희자 시인의 시적 세계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로 확장된다. 그는 외형적 사건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성찰하고, 폐허 속에서도 인간적인 울음을 길어 올린다. 건물 철거의 장면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늙어가는 육체와 소멸하는 기억의 은유이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시대의 흔적과 공동체의 기억이 사라져 가는 풍경으로 읽힌다.
그의 미의식은 이러한 무상(無常)의 미학에 있다. 파괴의 순간에도 눈물의 형상을 포착하고, 재로 흩어진 폐허 속에서도 삶과 죽음의 동일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건물 철거'는 간결한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파괴와 소멸의 철학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 건물이 사라지는 장면을 넘어서, 존재의 종말과 그 앞에서의 평등성을 성찰하게 한다.
시인은 무너지는 벽에서 인간의 속살을 보고, 흩날리는 먼지에서 눈물을 보며, 재로 돌아가는 폐허에서 삶과 죽음의 일치를 본다. 변희자 시인의 가치철학은 사라짐을 두려움이 아닌 성찰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쌓아 올리고 있는 삶의 벽은 언젠가 무너질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것이 후회와 회한의 폐허일지, 아니면 울음 속에서도 의미를 품은 재일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변희자 시인의 시는 파괴와 소멸의 장면을 통해 외려 삶을 더욱 진지하게 응시하게 만드는 고귀한 울림을 남긴다.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들에게 희망을》 ㅡ기둥에서 고치로, 고치에서 하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