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처럼 굳은 마음, 바람처럼 열려야 할 마음 ㅡ 청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돌처럼 굳은 마음, 바람처럼 열려야 할 마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간의 마음은 흙과도 같아 유연할 때 생명을 품고, 돌과도 같아 굳어지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완악한 사람은 흙의 마음을 잃고 돌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단단히 굳어져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결국 그들 자신마저 고립시킨다.

완악頑惡한 사람은 종종 강인해 보인다. 자신의 주장에 흔들림이 없고, 끈질기게 밀어붙이니 마치 자기 확신이 가득한 듯하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허약하다. 두려움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틀이 무너지면 존재 전체가 부정당한다고 믿는다. 틀린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무너질까 두려워 돌처럼 굳어버린다. 마치 바람 한 점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놓은 닫힌 성벽과 같다.

그들의 언어에는 늘 "나"라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내가 해야 한다’. 이 자기 중심성은 결국 상대를 거울로 삼아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거울 속의 세상은 늘 왜곡되어 있고, 자기 얼굴만 되비출 뿐이다. 완악한 사람은 결국 타인과 관계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고립된다. 그 집요함은 타인을 힘들게 하지만, 더 깊이 보면 스스로의 외로움을 더 짙게 만들 뿐이다.

관계 속에서 이런 완악함은 사막의 모래바람과 같다. 부드러운 꽃잎 같은 일상의 대화를 할퀴고, 따뜻한 마음의 샘을 메마르게 만든다. 상대는 처음에는 이해하려 애쓰지만, 결국 지쳐버리고, 남는 것은 황량한 모래 언덕뿐이다. 완악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을 지켰다 생각하겠지만, 실은 관계라는 오아시스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해답이 단순히 회피는 아니다. 돌을 부수려 망치질할 필요는 없다. 바람과 비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위를 닳게 하듯, 완악한 마음에도 부드러운 흐름이 필요하다. 단호히 경계를 세우되, 상대의 내면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헤아려야 한다. 그 완강함은 악의가 아니라 상처의 다른 얼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색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완악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닫힌 마음 앞에서 나는 과연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나 역시 때로는 작은 고집에 갇혀 돌이 되어 있지 않은가? 완악한 마음은 타인을 옭아매지만, 동시에 내 안에도 비슷한 그림자가 숨어 있음을 일깨운다.

삶은 선택이다.

돌처럼 굳어 타인을 밀어내며 홀로 남을 것인가, 흙처럼 유연해 서로를 품으며 함께 살아갈 것인가. 완악함은 자신을 지키는 방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

열린 마음은 상처받을 위험을 안고도 타인과 세계를 받아들이는 길이며, 그 안에서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된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만남 속에서 그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완악함을 택하면 고립이 남고, 유연함을 택하면 사랑이 남는다. 인생이 끝날 때,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기를 바라는 것은 차가운 돌의 흔적이 아니라 따뜻한 바람의 자취가 아니겠는가.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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