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 ― 권력과 비극의 대물림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청람 김왕식 평론집 제2권

《침묵 너머의 언어》 네 번째 글,


4.『아가멤논』
― 권력과 비극의 대물림




□ 선정이유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은 권력과 비극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되풀이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그리스 비극이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은 왕의 영광을 안고 귀환하지만,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칼날에 쓰러진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아트레우스 가문의 저주가 이어지는 연속적 비극이다. 권력의 획득은 곧 새로운 피의 씨앗이 되고, 승리는 또 다른 몰락을 낳는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이 가진 파괴성과 인간이 역사 속에서 반복하는 폭력의 연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늘날에도 권력의 유혹과 비극적 결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아가멤논』은 고대의 기록을 넘어, 시대마다 되살아나는 권력의 비극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 들어가는 말


『아가멤논』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기원전 458년 아테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상연되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왕의 귀환과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집안의 저주와 권력의 피비린내 나는 대물림을 다룬 역사적 비극이다.

트로이아 전쟁은 그리스 전역에 걸친 대규모 전쟁이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승리를 이끌었으나, 귀환길은 영광이 아닌 죽음으로 끝났다. 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를 기다리며 복수를 준비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전쟁을 위해 아가멤논이 친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편의 배신, 권력에 대한 분노가 더해졌다.
결국 아가멤논은 전쟁에서 얻은 승리를 가정에서의 죽음으로 치르게 된다.

이 작품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권력의 영광이 곧 몰락의 씨앗이라는 점이다. 아가멤논은 전쟁의 영웅이지만, 동시에 가문의 저주와 개인적 죄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둘째, 개인적 복수와 집단적 정의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행위는 개인적 복수인 동시에, 희생당한 딸을 위한 정의의 실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았고, 결국 아트레우스 가문의 비극은 계속 이어졌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 권력의 연쇄적 성격을 드러낸다. 권력은 단순히 한 사람의 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안과 후대에까지 저주의 형태로 남는다. 아가멤논의 죽음은 아들 오레스테스의 복수를 부르고, 복수는 또 다른 피의 연쇄를 이어간다. 결국 이 작품은 권력과 폭력의 악순환을 보여주는 집단적 드라마다.

오늘날 『아가멤논』은 단순히 고대 비극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정치적 권력, 사회적 지배, 전쟁과 폭력의 역사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같은 오류를 되풀이한다. 권력의 영광 뒤에는 늘 누군가의 희생이 있고, 그 희생은 새로운 복수와 갈등을 낳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대의 비극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 가운뎃말

권력과 피의 연쇄


1. 귀환의 영광과 죽음의 그림자

『아가멤논』은 영웅의 귀환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귀환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아가멤논은 트로이아 전쟁의 승리자로 돌아오지만, 집안의 문턱을 넘는 순간 이미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그의 귀환은 왕권의 재확립이 아니라, 가문의 저주가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아가멤논은 전쟁 영웅이었지만, 동시에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죄책을 안고 있었다. 전쟁 출정길에 순풍을 얻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제물로 바친 죄, 전리품으로 데려온 여사제 카산드라를 공개적으로 동행시킨 오만, 이 두 가지는 그의 귀환을 파멸로 이끌었다. 권력의 영광은 가정의 파괴와 맞바꾼 것이었고, 전쟁의 승리는 곧 집안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2.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

아가멤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는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였다. 그녀는 단순한 질투의 화신이 아니었다. 그녀의 칼에는 복수의 명분이 담겨 있었다. 딸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분노, 남편의 배신에 대한 응징, 그리고 가문의 저주를 끊고자 하는 갈망이 동시에 작동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극적인 반전을 연출한다. 붉은 융단을 깔아 남편을 맞으며 겉으로는 충성을 다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융단은 환영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하는 덫이었다. 그녀는 치밀하게 준비된 계략으로 남편을 살해한다. 이 장면은 권력과 가정, 복수와 사랑이 얽힌 비극의 절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관객은 여기서 단순한 공포만 느끼지 않는다. 외려 복수의 정당성과 잔혹함 사이에서 갈등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행위는 정의인가, 아니면 범죄인가. 아이스킬로스는 이 질문을 명확히 답하지 않는다.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 조건의 모순을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3. 가문의 저주와 비극의 대물림

『아가멤논』은 한 개인의 죽음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아트레우스 가문의 저주가 다시 이어지는 서막이다.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는 형제와 권력을 두고 다투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형제의 자식을 잡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인 사건은,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저주의 시작이었다.

아가멤논의 죽음은 이 저주가 세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피의 연쇄는 곧 아들 오레스테스의 복수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아들이 살해하는 또 다른 비극, 이것이 「오레스테이아」 3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다. 결국 권력과 복수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피의 굴레로 대물림된다.

이 연쇄는 단순한 가족사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 자체의 속성을 드러낸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폭력을 내포하며, 폭력은 반드시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아이스킬로스는 이를 통해 권력의 비극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임을 강조한다.

4. 권력의 오만과 인간의 한계

아가멤논의 몰락은 권력의 오만이 불러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승리를 겸손하게 누리지 못했다. 카산드라를 전리품처럼 데려온 행위는 아내와 가문을 모욕하는 오만이었고, 딸을 희생시키며까지 얻은 권력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선 폭력이었다.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이 권력을 신적 차원으로 확대하려 할 때, 그 대가로 파멸이 찾아온다. 아이스킬로스는 아가멤논을 통해 권력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승리는 오래가지 않고, 오만은 반드시 몰락을 부른다.

5. AI 시대와 권력의 대물림

오늘날 『아가멤논』을 읽는 것은 단순한 고대의 교훈을 되새기는 일이 아니다. AI 시대에도 권력과 폭력의 대물림은 여전히 반복된다. 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만들어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장악한 이들은 막대한 힘을 가진다. 그러나 그 힘이 오만과 독점으로 흐를 때, 사회적 균열과 갈등이 뒤따른다.

『아가멤논』은 우리에게 권력의 본질을 묻는다. 권력은 언제나 희생을 요구한다. 전쟁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기술의 발전 속에서 누군가의 희생 위에 권력이 세워진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 권력은 반드시 비극을 낳는다.

아이스킬로스는 결국 권력과 폭력의 연쇄가 법과 제도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끊어져야 한다는 점을 「오레스테이아」 전체를 통해 제시한다. 그러나 『아가멤논』 자체는 그 연쇄가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과 권력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해도, 인간이 오만을 버리지 않는 한 비극은 되풀이된다.


□ 맺음말

권력의 그림자와 인간의 책임

『아가멤논』의 비극은 단순히 한 왕의 몰락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권력은 영광을 약속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의 희생이 깔려 있다. 아가멤논은 전쟁의 승리자로 돌아왔으나, 동시에 딸을 제물로 바친 아버지였고, 가정을 파괴한 남편이었다. 그의 귀환은 국가적 영광이자 개인적 파멸의 순간이었다. 권력은 승리를 가져오지만, 그 승리는 반드시 누군가의 눈물 위에 세워진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는 이 모순을 드러낸다. 그녀는 단순한 질투의 아내가 아니다. 그녀는 억울하게 죽은 딸을 대신해 칼을 들었고, 남편의 오만을 응징했다. 그러나 그 행위는 또 다른 피의 연쇄를 낳았다. 정의와 복수,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자리에서 권력의 비극은 더욱 깊어진다. 관객은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바로 이 모순이 비극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든다.

아트레우스 가문의 저주는 단순한 신화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대물림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폭력과 파괴의 상징이다. 한 세대의 승리는 다음 세대의 복수를 부르고, 복수는 다시 새로운 피의 굴레를 낳는다. 『아가멤논』은 이 연쇄의 시작을 보여주며, 권력이란 언제나 불안정하고 폭력의 씨앗을 품고 있음을 증언한다.

오늘날에도 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적 권력, 경제적 권력, 기술적 권력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권력이 집중될수록 희생은 커지고, 그 희생은 언젠가 또 다른 갈등과 복수로 돌아온다. AI 시대라 해서 다르지 않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장악한 소수가 권력을 독점할 때, 사회적 균열과 갈등은 반드시 찾아온다. 기술이 새로운 영광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책임과 도덕적 자각을 결여한다면, 결국 비극적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아가멤논』은 우리에게 묻는다. 권력을 잡는 자는 무엇을 대가로 삼을 것인가? 영광을 좇는 길에 누구의 희생이 숨어 있는가? 그리고 그 희생을 잊은 채 세워진 승리는 과연 지속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고대 아테네 시민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던져진다.

결국 아이스킬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 경고한다. 권력의 오만은 반드시 몰락을 부른다. 폭력의 연쇄는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희망의 실마리도 남긴다. 비극을 직시하고, 그 반복을 끊으려는 새로운 질서와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의 힘, 공동체적 합의와 도덕적 자각이 없다면, 권력은 언제나 비극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가멤논』은 한 왕의 죽음을 넘어서, 인간 조건의 본질을 드러낸다. 권력은 유혹이고, 폭력은 그림자다. 그러나 인간은 그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 오만을 버리고, 책임을 짊어지고, 희생을 기억하는 길만이 비극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대의 비극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렇게 속삭인다.

“권력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그 대가를 외면하는 순간, 비극은 다시 시작된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응급호흡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