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냄새의 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저녁밥 냄새의 힘






퇴근길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각 층마다 다른 저녁 냄새가 스며든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고등어구이, 때로는 치킨 박스에서 새어 나오는 향기까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풍기는 냄새는 각 가정의 일기장 같다. 냄새 하나에 그 집의 풍경과 삶의 온기가 엿보인다.

어릴 적 시골 마을은 저녁 무렵이 되면 동네 전체가 하나의 부엌 같았다. 굴뚝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장독대 사이를 지나면 된장 냄새가 은근하게 배어 있었다. 친구들과 뛰놀다 허기가 져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부엌에서 국을 저으며 “씻고 밥 먹어라” 하던 목소리가 밥 냄새만큼 따뜻했다. 그 냄새는 단순한 음식의 향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게 하는 위로였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늦은 퇴근길, 현관을 열면 어둠만 기다리고 있다. 냄비 대신 전자레인지가, 된장찌개 대신 배달 봉투가 저녁상을 차지한다. 뜨끈한 밥 냄새 대신 일회용 용기 냄새가 방 안에 가득하다. 편리하지만, 그 냄새에는 오래 남는 위로가 없다. 오히려 허무가 밀려온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오늘은 치킨 말고 된장찌개 먹고 싶어.”
아빠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아빠가 한번 해볼까?”
그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집의 향기는 기름 냄새가 아니라, 된장의 구수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저녁밥 냄새는 세대와 시대를 넘어 마음을 묶는다. 맞벌이로 바빠도, 혼자 살아도, 잠시라도 냄비에 밥을 올려 두면 집 안 공기가 달라진다. 그 향기는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덮는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전쟁보다 무서운 건 밥 냄새가 사라진 세상일지도 모른다고. 밥 냄새 없는 집은 편리해 보이지만, 따뜻함이 비어 있다. 밥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붙잡는 끈이기 때문이다.

삶이 각박할수록 더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진수성찬이 아니다. 퇴근한 집 문을 열었을 때 코끝을 스치는 밥 냄새, 그 향기 하나면 충분하다. 그 냄새가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지우고, 내일을 버틸 힘을 준다. 삶은 화려한 요리의 향연이 아니라, 저녁밥 냄새 한 줌에서 가장 깊게 위로받는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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