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 ― 분산된 발의 질서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지네

― 분산된 발의 질서





지네는 수십 개의 다리를 가졌다. 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발들이 차례로 움직인다. 어느 하나가 멈추면 전체가 흔들리지만, 균형을 잃지 않으려 발들은 끊임없이 호흡을 맞춘다. 작은 발 하나가 무질서를 일으킬 수 있고, 작은 발 하나가 전체의 조화를 회복하기도 한다.

지네는 빠르다. 작은 발들이 물결처럼 이어져 땅을 미끄러지듯 달린다. 몸은 길고 부드럽지만, 발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기에 곡선은 무너지지 않는다. 속도의 본질은 힘이 아니라 리듬이다. 삶도 그렇다. 발걸음의 질서가 무너지면 큰 힘도 길을 잃는다.

지네의 몸은 독을 품었다.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한 번의 물림은 상대를 위협한다. 발이 많다는 것은 무력의 상징이 아니라 생존의 장치다. 수많은 발이 동시에 움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본질은 한 방향의 의지다. 분산은 흩어짐이 아니라 모임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의 사회도 지네와 닮았다. 무수한 발은 개인이고, 몸은 공동체다. 개인이 각자의 발걸음을 내딛지만, 흐름은 하나로 이어진다. 개인의 작은 불협이 전체를 흔들고, 개인의 작은 성실이 전체의 리듬을 살린다. 질서는 강제가 아니라 합의의 호흡이다.

지네는 그림자 속에서 산다. 낮은 곳, 습한 틈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자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산된 발들이 제 질서를 지켜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의 리듬이 이어지는 한 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외면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질서가 길을 세운다.

흩어져 있는 발들이 하나의 몸을 지탱하듯, 흩어진 사람들의 삶도 한 사회를 만든다. 질서 없는 자유는 무질서일 뿐이고, 강제된 질서는 곧 억압이다. 자유와 질서가 함께 움직일 때 길은 똑바로 이어진다.

어둠 속을 달리는 지네는 묻는다. 지금의 발걸음은 전체의 리듬을 살리는가, 아니면 무너뜨리는가. 분산을 흩어짐이라 오해하며 질서의 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발 하나의 어긋남이 전체의 길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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