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열차의 균열, 민중의 눈물이 남긴 역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피란 열차의 균열, 민중의 눈물이 남긴 역사




어느 원로 작가가 한마디다.

그 작가는 김훈 소설가이다.


"한국인은 힘들다!"


이 땅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일종의 역사적 고발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하던 기차의 참혹한 장면을 이야기한다. 그때 고위 관료와 권세가의 가족들은 승객이 앉아야 할 자리에 자리 잡았고, 심지어 피아노, 고급 가구, 송아지만 한 독일산 세퍼드 같은 반려견까지 싣고 떠났다. 반면 평범한 민중은 사람답게 앉을 자리를 얻지 못해 화물칸에 매달리거나 기차 지붕 위에 몸을 의탁했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떨어져 죽어갔고, 그 목숨은 그저 덧없이 흩날리는 먼지처럼 취급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계층의식과 선민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의 안위와 소유를 위해 타인의 생존을 내던졌고, 그 결과 민중은 가장 낮은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한 현실을 두고 원로 작가는 “우리나라는 참 슬픈 나라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슬픔은 단순히 전쟁의 파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 안에서 벌어진 차별과 계층의 잔혹한 벽에서 비롯되었다.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같은 민족을 체계적으로 노비로 부린 역사는 드물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피와 말을 나눈 사람들이 신분의 사슬에 묶여 서로를 지배하고 억눌렀다. 조선의 긴 신분제 역사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방식의 문제였고, 그것은 도리와 체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계층이 곧 운명이라 여기는 관습은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작동하였다. 기차 위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비극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제도와 의식의 구조가 빚어낸 필연이었다.

원로 작가의 말은 오늘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겉으로는 평등과 인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과 권력의 벽이 존재한다. 교육, 직장, 문화의 영역에서조차 소위 ‘선민 의식’은 여전히 변형된 형태로 살아 있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그 뿌리는 여전히 잔존한다.

문학은 이러한 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도구다. 원로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적 기억이 아니라, 민중의 눈물과 피를 문학의 언어로 옮겨놓은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언제든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증언의 끝에는 희망의 가능성도 숨어 있다. 원로 작가가 여전히 말하고 기록하는 이유는 절망을 고발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참된 변화는 기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과거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이 땅이 진정으로 슬픈 나라가 아니라, 향기로운 나라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을 존중하는 의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권력과 재산보다 더 높은 가치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다. 이를 무너뜨리는 선민사상과 계층의식은 문학의 힘, 역사적 성찰, 그리고 공동체적 연대 속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원로 작가의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울린다. 그것은 단순한 한탄이 아니라, 후세를 향한 경고이자 부탁이다. 우리가 귀 기울일 때, 그 울림은 현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한국전쟁의 피란 열차에서 떨어져간 무명의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역사 속에 새기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도리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잊힌 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완성된다. 민중의 눈물이야말로 이 나라의 진짜 역사이며, 그것을 잊지 않는 한 이 땅은 슬픔을 넘어설 수 있다. 원로 작가가 남긴 말은 곧 우리의 과제이고, 문학이 지켜야 할 진실의 언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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