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왔다 간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괜히 왔다 간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정리한다. 누군가는 의미를 찾고, 누군가는 남긴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어떤 도인은 단 한마디로 모든 무게를 비워냈다. “괜히 왔다 간다.”

이 말은 후회의 언어가 아니다. 쌓은 것도, 이룬 것도 결국은 흩어진다. 그 깨달음을 오래 붙든 자만이 말할 수 있다. 삶의 모든 성취는 시간 속에 희미해지고, 이름은 흙 속에 사라진다. 그러니 왔다 간 일이 괜한 것이라는 말은 허무가 아니라 통찰이다.

여기에는 공(空)의 사상이 겹쳐진다. 인연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 존재다. 내가 남긴 흔적도, 쥔 재물도, 지닌 지식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 마음은 비워진다. 비워짐은 허무가 아니라 가벼움이다.

“괜히”라는 말에는 해학이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흔히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라 말한다. 그러나 도인은 정반대로 말했다. 그 순간 무겁던 공기는 풀리고, 듣는 이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진다. 웃음은 얕지 않다. 수행 끝에 도달한 초연이다.

천상병의 “소풍”과 도인의 “괜히”는 서로 다른 어휘지만 같은 자리에 닿는다. 하나는 삶을 즐기며 떠나라는 가르침, 다른 하나는 애초에 남길 것이 없음을 인정하는 지혜다. 둘 다 삶을 짊어지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소유와 성취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도인의 한마디는 그 믿음을 흔든다. 아무리 쌓아도 결국 흩어진다. 애써 남기려 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달라진다.

“괜히 왔다 간다.” 그 말은 닫히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허무의 울림이 되고, 누군가에겐 초연의 미소가 된다.
그 여운은 오래 맴돌며, 잡을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빠져나간 자리에 다시 허공만 남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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