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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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지루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전쟁의 지도자였던 처칠은 마지막에 의외의 말을 남겼다.
“나는 이제 지루하다.”
영웅의 언어라기보다 한 인간의 고백에 가까웠다. 그는 역사의 무게를 짊어졌고, 수많은 결정을 내렸다.
끝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권태를 말했다.
지루함은 허무와 다르다.
허무는 의미를 부정하지만, 지루함은 이미 다 겪었다는 체험에서 나온다. 전쟁과 권력, 명예와 실패. 모든 것을 지나온 자에게 남는 것은 오히려 공허한 권태였다.
그의 말은 힘이 빠진 푸념처럼 들릴 수 있다. 그 안에는 깊은 정직이 있다.
“모든 영광이 지나가면 남는 것은 지루함뿐이다.”
이 구절은 처칠의 마지막이 단순한 개인의 말이 아니라, 인간사의 법칙임을 드러낸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승리의 환호도 오래 가지 않았다. 명예는 잠시 불꽃처럼 빛났으나 곧 식었다. 그가 본 것은 불꽃 뒤의 어둠이었다. 그 어둠은 슬픔이 아니라 무력한 권태였다.
지루하다는 말은 새로운 눈길을 열어준다. 인생의 정점에 서 본 자가 마지막에 권태를 말한다면, 우리가 좇는 영광은 얼마나 덧없는가. 그러나 그 덧없음은 또 다른 자각을 일으킨다.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그의 마지막 표정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그 말은 여전히 울린다. 전쟁의 영웅이자 정치의 거인이, 결국 지루함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는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지루하다는 말은 끝이 아니다.
외려 또 다른 질문이다.
영광과 권태가 모두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