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위에 띄운 편지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물 위에 띄운 편지




청람 김왕식





아이가 강가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작은 종이쪽지가 쥐어져 있었다. 서툰 글씨로 몇 마디 말을 적은 뒤, 조심스레 접어 물 위에 띄웠다.
강물은 그 종이를 떠안고 천천히 흘러갔다.
아이는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강 건너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놓아주었다.

편지를 띄운다는 행위는 어쩌면 사람의 본능일지 모른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 직접 전할 수 없는 사연, 혹은 부끄러워 감춘 고백.
우리는 종종 그것들을 종이에 적어 흘려보내고 싶어진다.
받는 이가 누구인지조차 분명치 않아도, 흘려보내는 그 순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강물은 우리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묵묵히 받아준다.
흘러가면서도 함부로 찢지 않고, 소리 내어 떠들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 안아 자신이 갈 수 있는 먼 곳으로 데려다준다.
강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 나른 전령이었다.

강물은 언제나 사람의 삶과 함께 있었다.
연인들이 눈물로 적은 글을 띄우기도 했고, 전쟁터로 떠나는 이들이 마지막 마음을 맡기기도 했다.
때로는 돌아오지 못한 이의 소식을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
편지는 결국 도착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보낸 사람의 마음은 이미 강물 속에서 치유되었다.

수많은 편지를 쓴다.
직접 쓴 편지일 수도 있고, 마음속에서만 되뇌는 편지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짧은 문장들이 마음에 고여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흘러나온다.
모든 편지가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상대에게 닿지 못한 채, 시간 속에 흘러가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헛된 것은 아니다.
강물 위에 띄운 편지는 받는 이에게 닿지 않더라도, 흘려보낸 순간 이미 우리를 바꾼다.
그것은 미움 대신 용서를, 원망 대신 이해를 선택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흘려보내지 않았다면 가슴속에 응어리진 채로 썩어갔을 감정이, 강물 위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편지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강물은 멀리 흐르지만, 강가에 앉아 있던 우리의 기억 속에는 그 장면이 남는다.
문득 그날을 떠올리면, 우리는 알게 된다.
편지를 띄운 것은 상대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음을.

세상에는 여전히 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떠나간 이에게, 멀어진 벗에게, 이미 늙어버린 부모에게.
우리는 때늦은 후회 속에서 마음의 편지를 꺼내지만, 현실은 그것을 받아줄 주소를 잃어버렸다.
그럴 때 강물은 다시 우리 곁에 있다.
받아줄 이가 없어도, 흘려보낼 수만 있다면, 그 편지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강물은 가르쳐준다.
모든 말은 반드시 상대에게 닿아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어떤 말은 그저 흘려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 흘려보냄이 곧 나를 살리고,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오늘, 당신의 마음에도 전하지 못한 편지 하나가 있지 않은가.
그 편지를 꼭 쥐고만 있지 말고, 조용히 강물 위에 띄워보라.
받는 이가 몰라도 괜찮다.
강물이 그것을 멀리 데려가 줄 것이다.
그리고 그 편지는 언젠가, 다른 모양으로 당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강물 위에 띄운 편지는 단순한 종잇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무게를 덜어낸 자유이고, 지나간 상처를 정화하는 의식이며, 다시 걸어갈 용기를 선물하는 기도다.

흘려보내는 순간, 이미 우리는 새로워진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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