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등, 세상의 품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머니의 등, 세상의 품


청람 김왕식



어린 시절,
가장 안전했던 자리는 어머니의 등이었다.
어깨에 매달려 졸다가도, 등에 업혀 들판을 지나며 흔들리다가도,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등은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그 위에는 세상을 다 막아줄 것 같은 넓은 품이 있었다.
아이에게 어머니의 등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등은 늘 앞을 향해 있었다.
아이를 업은 어머니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늘 바람과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아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고요한 체온과 흔들림뿐이었다.
그 등 뒤에서 아이는 세상을 배웠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의 냄새를 맡고, 사람들의 얼굴을 스치듯 바라보며, 아직 만나지 못한 세상을 미리 맛보았다.

어머니의 등은 말이 없었다.
침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언어였다.
등은 "괜찮다"라고 말했고,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일렀다.
그 등 위에서 아이는 울다 웃고, 웃다 잠들었다.
말없이 품어주는 힘, 그것이 바로 등이라는 언어였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면, 어머니의 등은 조금씩 굽어간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그 등은 서서히 세월의 곡선을 닮는다.
굽은 만큼 더 많은 것을 품었다.
자식의 짐을 나누어 지느라, 삶의 무게를 감싸 안느라, 그 등은 어느새 세상의 품으로 넓어져 있었다.

등은 늘 희생의 자리를 대신했다.
앞에서 누군가를 이끌고, 뒤에서 누군가를 지탱했다.
넘어진 아이를 업어 일으키고, 지친 남편을 위해 다시 무거운 짐을 졌다.
그러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등은 늘 말없이 견디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큰 울타리가 되었다.

누구나 인생의 길 위에서 자신을 떠받쳐준 등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의 등이든, 아버지의 등이든, 혹은 친구나 스승의 등이든.
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삶이 힘겨울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등을 떠올린다.
그때의 따뜻함이 다시 등을 밀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건네준다.

이제 우리가 나이 들어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면, 그 안에 세월이 보인다.
굽은 등, 깊게 파인 어깨, 그러나 여전히 따뜻한 체온.
그 모습을 볼 때 비로소 깨닫는다.
어머니의 등은 단순히 아이를 업은 자리가 아니라, 세상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자리였음을.
그 등 위에서 우리가 자라났고, 그 등 위에서 세상은 우리를 지탱했다는 사실을.

삶의 본질은 어쩌면 ‘등’에 있다.
앞에서는 늘 누군가를 위해 길을 개척하고, 뒤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를 지탱하는 자리.
사람이 사람을 등에 업을 때, 그 관계는 가장 강하게 맺어진다.
서로의 짐을 짊어지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등에 기대고, 또 누군가를 등에 업으며 살아간다.
어머니의 등에서 배운 그 품이 이제는 우리의 몫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가 누군가의 세상을 짊어져야 한다.
아이를 업고, 약한 이를 감싸며, 지친 이를 떠받쳐야 한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등은 세대를 넘어 사랑의 자리를 잇는다.

어머니의 등은 단순한 뒷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품은 자리이며, 사랑이 가장 조용히 그러나 가장 깊게 드러나는 언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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