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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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뒷모습
청람 김왕식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묘한 감정이다.
앞모습은 웃음을 담고, 눈빛을 담고, 말로써 마음을 전한다.
뒷모습은 말이 없다.
그저 고요히 걸어가는 등과 어깨,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발걸음뿐이다.
바로 그 침묵 속에, 앞모습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뒷모습은 언제나 크고 단단해 보였다.
일터로 나가는 새벽,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의 눈에는 그 뒷모습이 마치 산처럼 의지할 만한 모습으로 새겨졌다.
말은 적었지만, 그 등은 묵묵히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곧 아버지의 언어였다.
어머니의 뒷모습은 조금 달랐다.
밭에서 김을 매거나 부엌에서 일할 때, 허리를 굽히고 움직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에는 삶의 고단함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따뜻함이 있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을 차리고, 옷을 꿰매고, 다시 길을 나서던 뒷모습은 고생 속에서도 사랑을 품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본 아이들은 언젠가 깨닫는다.
사랑은 화려한 말보다, 무수히 반복된 희생의 몸짓 속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흔히 아쉬움을 느낀다.
그것은 이미 떠나가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멀어지는 기차의 뒷모습, 손을 흔들다 놓아버린 이의 뒷모습, 마지막 병실 문을 나서던 가족의 뒷모습.
그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앞모습은 쉽게 흐려져도, 뒷모습은 더 오래 각인된다.
그 속에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절실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삶의 길 위에서 우리는 수없이 뒷모습을 남기고, 또 누군가의 뒷모습을 따라 걷는다.
스승의 뒷모습을 따라 배우고, 선배의 뒷모습을 좇아 길을 찾는다.
언젠가 우리가 남긴 뒷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길이 된다.
뒷모습은 단순히 떠나는 자리가 아니라, 이어지는 자리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꾸밀 수도, 숨길 수도 없다.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드러난다.
외려 앞모습보다 진실하다.
사람은 앞에서는 웃고 있으면서도, 돌아서는 순간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 뒷모습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등을 잔뜩 웅크린 채 원망을 안고 떠날 수도 있고, 혹은 담담히 걸어가며 사랑을 남길 수도 있다.
뒷모습은 마지막 인사이자, 남겨진 자에게는 오래도록 울림이 되는 장면이다.
삶이란 결국 수많은 뒷모습의 연속이다.
어제의 뒷모습이 오늘의 길을 만들고, 오늘의 뒷모습이 내일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뒷모습을 남겨야 할까.
돌아보지 않아도 따뜻하게 기억되는 뒷모습, 멀어져도 오히려 그리움으로 남는 뒷모습,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일 것이다.
오늘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또다시 등을 보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 뒷모습을 본 누군가는 우리가 몰랐던 위로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뒷모습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삶의 본질은 때로 화려한 말이 아니라, 조용히 남겨지는 뒷모습 속에 숨어 있다.
돌아보는 뒷모습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다. 그것은 떠남 속에 남겨진 사랑이고, 끝나는 자리에서 새롭게 이어지는 관계의 언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