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새긴 이름, 인생이 새긴 사랑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나무가 새긴 이름, 인생이 새긴 사랑





청람 김왕식





철없는 아이
연필 깎는 칼을 들고 집 앞 나무 앞에 섰다.
말없이 서 있던 나무는 그저 그 아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아이의 작은 손이 날카로운 칼끝을 나무껍질에 대었다. 거침없이 글자를 새겼다. 자신의 이름, 또박또박 세 글자. ‘이라도.’

아이에게 그 순간은 그냥 재미있는 놀이였을 것이다.
혹은, 어린 마음에 세상을 향해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첫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무에게 그것은 달랐다.
칼끝이 지나가는 자리는 아리고, 벗겨지는 껍질 아래로 통증이 스며들었다.
나무는 외치지 않았다.
움찔하며 자신을 방어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밀쳐내지도 않았다.
그저 악물고 참았다.
상처는 침묵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이의 손은 어느새 다른 놀이로 시간이 흘렀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사계절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놀랍게도,
몇 년 후 나무는 그 아이의 이름을 더 크고, 더 선명하게 자신의 몸에 새겨주었다.
처음에는 흉터 같았던 그 자리가, 어느 순간 나뭇결처럼 자연스럽게 우러나 있었다.
'이라도'이름 석 자가 나무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무는 그저 상처를 견딘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흔적을 ‘기억’으로 받아들였고,
그 기억을 ‘사랑’처럼 품었으며,
그 사랑을 ‘기록’으로 되새긴 것이다.

그 과정은 아팠다.
그 아픔은 미움이 아니라 성장으로 변모했다.
이 얼마나 고요한 희생이며, 얼마나 위대한 인내인가.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부딪힌다.
누군가는 말 한마디로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무심한 눈길로 흔적을 남긴다.
그 상처는 순간이지만, 흔적은 오래간다.
그 고통의 자리 위에 우리는 무엇을 새길 것인가.
원망의 이름일까, 용서의 기도일까, 아니면 사랑의 문장일까.

나무는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증오로 응답할 필요는 없다고.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가, 가장 오래된 관계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고.
어떤 관계는, 칼로 새겨진 아픔조차 품어 안고 다시 사랑으로 되돌려줄 만큼 단단하다고.

세상에는 말없이 흘러가는 존재들이 있다.
나무처럼, 어머니처럼, 오래도록 참아주는 사람들.
그들은 뿌리로 버티고, 가지로 감싸며, 상처 위에도 꽃을 피운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신을 새긴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
누군가는 이미 떠났고, 누군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그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져 살아 숨 쉰다.

우리는 나무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빚지며 살아간다.
그들이 새긴 이름 위에 다시 자신의 삶을 얹고, 기억하고, 회복하며 나아간다.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가슴에 조용히 이름 하나를 새기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은 상처로 아파하면서도 묵묵히 우리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나무가 새긴 이름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내로 완성된 사랑이고, 고통을 감싼 기억이며,
시간이 빚어낸 아름다운 용서였다.

이것이 아픔 끝의 희생이라면,
그 희생은 오늘도 어디선가,
묵묵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ㅡ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일 아침, 계절의 문턱에서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