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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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계절의 문턱에서
청람 김왕식
주일의 신새벽,
하루를 여는 의식처럼 맑은 물에 손과 마음을 씻었다. 물의 무게는 가볍고도 단정했다. 하루가 아니라 한 계절을 헹구는 듯한 기분. 욕실 거울 앞에 선 얼굴 위로 햇빛 한 조각이 내려앉았다. 오래도록 함께해 온 중절모를 쓰고, 여름의 피로를 털어낸 옷으로 갈아입었다. 발걸음은 고요했고, 복장은 예의 바른 하나의 기도 같았다.
아파트 숲 사이를 걷는다.
콘크리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여전하지만, 바람의 감촉은 사뭇 달랐다. 무겁던 여름의 열기는 가시고, 바람은 이마를 식히며 잠시 머물다 스치는 계절의 손짓 같았다. 무언가가 떠나려 하고, 또 다른 무언가가 다가오는 시간. 그 어름에서 시 한 편이 문득 깨어났다.
김광균의 '추일서정', 가을의 문턱에 선 도시의 적막한 정서가 내 아침 풍경과 겹쳐졌다. 빛과 그림자가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순간, 삶은 시가 된다.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전선 위를 지나 숲으로 번지는 매미의 울음. 그 울음은 애써 힘을 끌어올리는 듯했다. 마지막 한 번, 옥타브를 끌어올려 여름의 끝을 불태우는 소리. 누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생명은 스스로 종결의 격식을 안다. 지금 이 순간, 매미는 더 이상 울음이 아니라 시간의 종을 치고 있었다.
머잖아 귀뚜라미가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다. 여름은 매미에게, 가을은 귀뚜라미에게 말을 맡긴다. 자연은 번갈아가며 목소리를 주고받으며 계절을 옮긴다. 사라짐은 소멸이 아니고, 이어짐은 계승이다.
이 겸허한 인수인계引受引繼 속에서 인간은 다시 배운다. 무엇을 놓아야 하고, 어떻게 물러서야 하며,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를.
햇살은 이제 사선으로 드리우고, 내 그림자가 바닥 위에서 가늘고 길게 늘어난다. 중절모가 만든 음영이 마치 하늘과 땅 사이, 나를 잇는 실루엣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이 산책은 단순한 걸음이 아니었다. 신앙과 존재, 계절과 시간, 삶의 태도가 하나로 겹쳐진 풍경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다시 그려보는 여백이었다.
주일 아침.
사람들은 교회로, 성당으로, 혹은 고요한 책상 앞으로 향할 것이다. 누군가는 몸을 씻고, 누군가는 마음을 씻으며 하루를 맞이하겠지. 그러나 오늘의 이 정결한 고요는 한 주를 견디게 해 줄 내면의 등불처럼 느껴진다.
이제 막 사라지는 매미의 마지막 울음은, 여름의 격정이 마지막으로 불러낸 송시(頌詩)처럼 들린다. 계절이 끝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끝을 스스로 노래하고 있다는 진실이 아름답다.
이것이야말로, 계절이 가르쳐주는 가장 문학적인 방식의 퇴장이다.
아름다운 마무음, 그리고 잔잔한 시작.
오늘, 그 문턱 위에서 나는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