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와 오상(五常): 잊힌 인품의 이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싸가지와 오상(五常): 잊힌 인품의 이름




청람 김왕식




우리 일상 언어 속에는 오랜 세월을 거쳐 다듬어진 문화적 유산이 숨어 있다. “싸가지 없다”는 표현도 그중 하나다. 단순히 무례하거나 버릇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 말의 뿌리는 오랜 철학적 전통 속에 놓여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단순한 행정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사방을 둘러싼 네 개의 대문과 도심 한가운데의 보신각은 도시 전체를 유교 윤리의 상징으로 설계한 결과물이었다. 동대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흥인지문, 서대문은 의(義)를 두텁게 하는 돈의문, 남대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숭례문, 북대문은 지(智)를 넓히는 홍지문이었고, 그 중심에는 신(信)의 상징인 보신각이 자리했다.

이 다섯 문과 종각은 인간이 지녀야 할 다섯 가지 기본 덕목, 즉 오상(五常)—인, 의, 예, 지, 신—을 상징한다. 한양은 곧 덕목의 도시였으며, 사방의 길은 모두 인격 수양으로 통하고 있었다.

각각의 덕목은 인간 내면의 네 가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인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측은지심,
의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악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
예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사양지심,
지는 도리에 따라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
그리고 신은 중심을 잃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광명지심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오상은 단지 도덕 교과서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심성의 뿌리였다. 조선의 공간 구조는 이러한 내면의 윤리를 외형으로 드러낸 상징적 지도로서, 사방에서 인·의·예·지를 갖춘 자만이 중심의 신뢰, 곧 신(信)에 도달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다섯 덕목 가운데 네 가지가 결여된 상태—인·의·예·지가 빠진 상태를 일컬어 '싸가지 없는 자'라고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싸가지 없다”는 표현의 유래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인품은 그가 가진 정보나 지식보다, 결국 어떤 마음을 지니고 사는가에 달려 있다. 신뢰 없는 인간관계는 삭막하며, 예의 없는 사회는 위태롭다. 인, 의, 예, 지는 단순히 가르치는 덕목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지금도 이 다섯 거울 앞에 서 있다.
“나는 과연 싸가지 있는 사람인가.”
그 물음은 시대를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싸가지 있는 사람—곧 오상五常을 내면에 지닌 사람만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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