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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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향기
바쁘게 살면 시간은 화살이 된다. 쏘아 올린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몸을 가르며 앞으로만 달린다.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자아는 점점 흐려진다. 삶의 중심이 뒤로 밀려나고, 나는 어디를 향하는지 알지 못한 채 내던져진다. 나는 느리게 보내는 시간을 찾는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은 나무를 빗대어 느린 시간의 가치를 말했다. 나무는 위로만 뻗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성장을 멈추고, 땅속 깊이로 뿌리를 내린다. 햇빛이 없는 계절에도 나무는 죽지 않는다. 뿌리에서 오래 숨 쉬며, 내일을 준비한다. 나무의 느림은 생존의 지혜다. 인간에게도 그 느림이 필요하다.
느린 시간은 나를 멈추게 한다.
멈춤 속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된다. 바쁘게 살면 눈앞의 일밖에 보이지 않는다. 삶은 눈앞만이 아니다. 삶은 과거에서 흘러오고 미래로 흘러간다. 느린 시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 흐름을 느낀다.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나의 삶도 거대한 질서 속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노동은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다. 노동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만 있지 않다. 노동에는 소명이 있다. 느린 시간 속에서만 그 소명을 다시 붙잡을 수 있다. 나는 왜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 질문은 바쁨 속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느린 시간에만 내 귀가 열린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느림 속에서 자란다. 빠른 시간 속에서 사랑은 계산이 된다. 이익과 손해를 재고, 효율을 따진다. 사랑은 계산으로 살지 않는다. 사랑은 기다림이고, 함께하는 숨이고, 곁에 오래 머무는 것이다. 느린 시간 속에서만 사랑은 그 뿌리를 내린다.
행복은 느린 시간을 타고 흐른다. 빠른 시간 속의 행복은 쾌락이다. 금세 타올랐다가 금세 사라진다. 느린 시간 속의 행복은 향기다. 꽃이 피어 바람에 흩날리듯, 오래 남아 삶을 감싼다. 그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느린 시간은 방황을 멈추게 한다. 바쁨 속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서두르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느린 시간은 길을 비춘다. 천천히 걸을 때 길은 보인다. 나무의 뿌리가 땅을 더듬듯, 나도 내 삶의 길을 더듬으며 걸어간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존재를 다시 확인한다.
나는 안다. 바쁘게 사는 시간도 필요하다. 몸을 움직여야 먹고살 수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린 시간이 없다면 삶은 텅 빈 껍데기다. 화살은 빠르지만, 표적을 빗나가면 무용하다. 나무는 느리지만, 천년을 산다. 인간도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 빠름 속에서 살고, 느림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느린 시간은 나를 인간답게 만든다. 그것은 나를 사람 곁에 머물게 하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한다. 나는 느린 시간 속에서 내 자아를 다시 붙잡는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느린 시간 속에서만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