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침묵으로 건네는 위로
상처는 인간의 몫이다.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다친다. 말로도, 눈빛으로도, 침묵으로도 마음은 베인다. 드러나지 않으려 애써도 상처는 깊은 곳에서 곪아간다. 그 앞에서 가벼운 위로는 무력하다. 다친 자리를 고치려는 성급한 손길보다 곁에서 오래 머무는 숨결이 더 큰 힘이 된다.
아픔을 작게 여길 수 없다. 사소해 보이는 흠집 속에도 삶 전체가 흔들린다. 모든 아픔은 사소하지 않다. 그것을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견뎌야 한다. 흘러내린 눈물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버틴 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깊다. 침묵 속에서 곁에 머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손끝의 체온 하나로도 위로는 전해진다. 쓰러지는 이를 조용히 떠받치듯, 삶의 무게에 눌린 이의 어깨를 함께 짊어지듯, 곁에 선다는 것은 가장 단단한 동행이다.
흉터는 흉터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온 삶의 증거다. 깨진 그릇이 더 깊은 빛을 담듯, 상처 입은 마음 또한 새로운 빛을 받아들인다. 상처는 버려야 할 결함이 아니라, 빛이 들어오는 틈이다. 우리는 그 빛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통이 있다. 고요 속에서 더 크게 울리는 울음이 있다. 그 침묵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배려다. 굳이 해답을 내지 않아도 된다. 곁에서 묵묵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고치려 들 필요가 없다. 지워낼 수 없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곁에 자리를 펴고 함께 머무르는 것, 그 시간이 진정한 위로가 된다. 삶이 우리를 흔들어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상처는 삶을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삶을 깊게 한다.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곁에 있어 줄 때, 인간은 다시 일어선다. 웃음을 되찾을 때까지, 아니 웃음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배려다. 거창한 약속도, 화려한 말도 아니다. 다만 함께 있겠다는 의지, 오래 머무르겠다는 마음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서로의 상처가 우리를 불러 세운다.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한다. 그리고 오래 머문다.
ㅡ 청람 김왕식